"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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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파견됩니다. 그들을 만나는 이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병자에게 하느님의 치유를 전해줍니다. 멋진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한다는 것은 멋있기도 하고 또 은총을 체험하는 시간일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 전파의 길에 우리는 조바심 혹은 불안함을 많이 가집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것들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생각할 것이 많고 고려할 점도 많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하나라도 사람들보다 나은 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자됨'에 있어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들 걱정과 당부, 그리고 교육 등의 노력들이 뒤따릅니다. 사람들의 취향도 알아보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과 신심에 관계된 각종 자료들을 모으기도 합니다. 또 사람들이 감동받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으기도 하고 복음의 내용에 따른 주제와 예화들을 담은 자료들도 돌려봅니다. 때로 종교와 무관하게 유명한 사람들의 일화들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교만하다는 이야기로 자책하거나 질책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자들보다 무식한 이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성소에도 지식의 문제는 늘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작은 이런 이야기가 가능할 정도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열두 제자의 파견은 어떤 면으로 보아도 '무모하다'는 표현이 가능할 지경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십자가도 그들은 본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에겐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모든 과정이 드러났고 우리는 그 의미를 알고 있으며 주님과 함께라는 확실한 성사까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주님은 모든 것에서 '준비'라는 과정을 생략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했다고 가정하면 제자들의 모습은 대충 그려집니다. 


 

그들은 어떤 준비도 없었고 먹을 것도 없는 채로 사람들 사이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전하며 끼니를 신세지는 지경에 있었을 겁니다. 직업도 그렇고 그들에게 예언자의 풍모를 기대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살림에 어디에서 왔건 궁금할리 없는 이들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은 실망이 컸을지도 또 의심이 한가득이었을거라 생각됩니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는 말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리 없고 그들은 그들이 이해하는 말씀만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행색에 기대할리 없는 사람들에게서 복음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호소합니다. '돌아서라'는 말이 회개입니다. 


 

지금 성공을 위해 혹은 행복을 위해 하느님을 대하고 살아왔던 모든 것에서 돌아서서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 하느님의 원래 뜻으로 돌아서서 자신이 아닌 세상을 위해 자신의 삶의 목적이 있음을 알고 어울려 함께 사는 방법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 회개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다름아닌 제자들이 행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사람들은 신분은 그대로인 채 하느님을 알고 예수님을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처럼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주님이 아닌 그저 우리와 같은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회개는 그래서 어쩌면 쉬운 선택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은 뉘우치고 반성하는 느낌이 강하다면 이 사람들을 보고 바뀌는 마음과 태도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고 내용을 다른 것으로 채우는 것이니 충분히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그들에게 밥 한끼를 내어 주며 그들과 함께 살았으니 말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것.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겁없이 길을 떠난 제자들이 마냥 부럽습니다. 그들을 보내시며 걱정보다 기쁨을 주신 주님도 더 멋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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