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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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복음은 고향에서 불신을 경험하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내어 놓습니다. 아무것도 특별해지지 않은 사람의 귀향은 쉽게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벗겨내지 못합니다. 무엇 하나라도 달라진 점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에 대한 무시가 섞인 생각에서부터 그를 살펴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은 목수였던 그분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들의 비뚤어진 태도가 아니가 그들이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근본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누군가에게 "스승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예수님이셨지만 고향에서는 그저 목수일 뿐이었던 예수님의 근본이 달라질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까지 의심하고 무시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닌 그들을 평가하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물론 그들 스스로를 별 가치 없는 존재들로 여기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열거하는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과 함께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를 말하지만 그 말은 그저 하는 말일 뿐입니다. 진심으로 자신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여기고 있었다면 그들은 그들과 함께 살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무시하거나 가치 없이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런 불신이 아주 오래된 것임을 느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선택도 예전부터 같았음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은 예전부터 다윗을 선택하셨던 것 처럼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는 평범한 이들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말씀을 주셨고 그 이유로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같은 이유로 하느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듣지 않았던 셈입니다. 


 

예수님을 놀라게 한 것은 놀라운 믿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고향 사람들의 굳게 되어 버린 마음이 예수님을 놀라게 합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원고 없는 강론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눈과 마음에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했던 게 시작이었습니다. 수도 없는 말들로 강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강조하는 교회입니다. 그것이 냉담률을 좌우할 정도라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원고 없이 하는 강론은 '무리수'가 맞고 경솔함을 자신 스스로 만드는 어리석음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람들의 '닫힌 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리에 닫힌 귀. 그래서 잠겨버린 마음은 하느님께 자신을 표현하고 싶을 떄만 열립니다. 매일 같이 이야기를 해도 그것은 그냥 '소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상황들을 꽤 오랫동안 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을 '콩나물 시루'에 비교하며 누군가의 말을 옮깁니다. 그러나 사람은 콩나물이 아닙니다. 말씀이 흘러서 어느 한 지점에서 큰다는 기대로 사람을 표현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 스스로를 무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님이 느끼신 놀라움과 같을리 없다고 말해야 하지만 신자들과 함께 하는 그 미사에서 느낀 것은 그야말로 놀라움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든 충격이 못난 사제의 일탈을 가져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듯 합니다. 고향에서의 사람들. 예수님이 너무 평범해서 그렇다고 말하기보다 이제는 그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들여다 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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