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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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기다리는 우리는 곧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습니다. '혈육'이라는 공통분모에 산 이과 죽은 이가 함께 맞이하는 어느 때보다 성대한 기념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해 우리가 설에 나눌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성경 말씀은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에서 읽으신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말씀에 대한 해석 대신 그 말씀이 지금 실제 이루어졌음을 선언하십니다. 


 

바로 당신이 이 말씀을 이루신다는 뜻이고, 또 그 말씀이 과거의 약속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시간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진지하고 확신에 찬 이야기는 전혀 처음 들어보는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가 됩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사실 어느 곳에서나 경험하는 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요셉의 아들은 예수님이 고향에서 불리던 호칭입니다. 또한 그것은 나자렛의 젊은 목수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곧 우리가 다 아는 예수가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또 당황스럽다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었으나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선생'의 교육을 듣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그 말씀이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리라는 것을 기대는 하지만 실제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성공한 사람이 아닌 익숙한 목소리로 그 말씀이 실제라고 말하는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믿을 바가 못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는 그냥 예수지 그가 무슨 하느님의 일을 할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말라버린 마음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십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사람들의 반응은 슬프지만 현실적인 태도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고향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고 그도 하느님의 백성이지만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 희망 없는 세대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 안에서 얼마나 하느님을 현실적으로 느낍니까? 성당에서야 당연히 제대가 있고 감실에 성체가 모셔져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우리는 성당 밖으로 나서는 순간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것을 이내 잊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주님을 잊고 살았다고 반성을 하곤 합니다. 이미 그리스도와 한 몸이면서도 자신은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으니 하느님에게 기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자조어린 이야기도 내뱉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과 하느님이 바라시는 세상은 전혀 다른 공간과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서도 하느님의 자녀이며 우리의 시간과 공간은 하느님이 만드신 바로 그 아름다운 곳이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만든 곳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외의 시간에 더 자연스레 하느님의 자녀로 행동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는 것을 자주 느껴야 하고 스스로 그 상황을 만들기도 해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의 오늘 선언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우리의 모든 행동은 예수님이 현실을 만드신 이사야의 이야기와 같아야 합니다. 곧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시간과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과 세상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 각자가 말입니다. 


 

올해 설에는 우리가 이런 이야기들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함께 일 때 누구도 가난 때문에 불행하게 이 명절을 지내지 않도록, 또한 억압 받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우리가 서로에게 용서와 해방을 선포하는 마음으로 연휴를 지내면 어떻겠습니까? 누구도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주님이 그러셨듯 말입니다. 


 

우리는 설 명절에도 그리스도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음을 잊지 말고 설 명절 그 숱한 혈육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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