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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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입니다. 씨앗이 땅에 뿌려져 자라나는 과정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가 어린 아이에게 강낭콩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세상 작은 것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람들을 불러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아주 소중한 근본을 일깨워 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그 씨를 뿌리고 그 결과를 거두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어떻게 그 씨가 자라 열매를 맺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일들을 시작하고 그 결과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기도도, 또 우리의 삶도 그러한 때가 아주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예수님의 비유가 많은 이유는 어떻게든 우리가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알아듣게 하시려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이치를 알아듣는데 많은 연구와 공부, 그리고 묵상과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주님이 우리에게 그 지극히 거룩하고 심오한 신비를 가르치려 사용하신 방법은 우리가 늘 주변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곧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이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많은 생각과 걱정, 또 계획과 실천을 통해 우리의 삶이 완성된다고 말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하루를 맞이하고 또 하루를 떠나 보냅니다. 우리는 왜 이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지 왜 우리는 이렇게 나이가 들어 버렸는지 또 그 속에 나는 왜 그렇게 밖에 못살았는지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지금에 왔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 모든 시간에 우리는 살아 있었고, 주변의 모든 삶에 영향을 받으며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노력한 것도 있지만 대게 그 노력들도 무엇인가를 만들어 보려고 맞서고 바꾸어 보려고 애를 썼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우리는 드러나는 결과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거나 혹은 간청과 때로 불안과 슬픔, 또 분노도 반복하곤 했습니다. 늘 결과를 기다리는 씨 뿌린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이 말입니다. 우리는 사실 우리가 잘 모르는 시간 안에 더 많이 성장하고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자라는 동안 우리는 이미 많은 이들을 책임지고 있었고 또 지금도 누군가는 내가 할 수 있는 힘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들이 그렇듯 결국 그 겨자씨는 우리이고, 우리는 수많은 새들이 쉬고 깃들일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다. 


 

예수님의 풀이를 얻은 제자들이 어떤 해설로 이 이야기의 속뜻을 들었을지 궁금하지만, 이 비유만으로도 이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된 듯 합니다. 


 

2001년 2월 1일 사제가 되었고, 2013년 2월 1일 장애인 복지관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당에서 2월 1일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겨자씨만한 자신을 향해 들려 옵니다. 지금도 자라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수많은 계획과 노력 또 게으름과 태만함 속에도 이렇게 자라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오늘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잘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도 예전에 비하면 모자람 투성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그늘에 깃들일 이들이 더 많아졌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이 열매의 추수는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만 그가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볼 일입니다. 


 

오늘을 맞이하는 그 날 함께 엎드린 벗들의 그늘을 축복하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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