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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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여러 생각 중 신과 인간의 싸움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신앙인 중에도 이 비율은 만만치 않게 많아 보입니다. 하느님을 선택함으로 인해 사람을 소홀히 하거나 어쩔 수 없는 비중에서 사람은 뒤로 밀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학교를 입할 할 때 신학교 문 앞에서 어머니와 이별을 하고 키만한 짐을 낑낑 거리고 들어갔을 때 저 역시도 그렇게 배웠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안에서 또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런 구분이 과연 합당한지 생각해 볼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관계를 끊어 내고 완전하고 거룩한 관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끊었다면 예수님의 선택은 아버지 하느님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어야 하는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아버지의 뜻을 세상 안에서 찾았고 우리에게도 그것을 알려주려 애를 쓰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인간적인 관계를 끊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가족들을 모른 척 한 듯 보이는 복음 내용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에게는 그분의 사적인 관계의 더 친밀한 가족이 있는 것을 전제로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립니다. 그들을 가르치던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그분의 혈육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잘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너무 간단하게 정리된 말씀에 우리는 예수님과 가족 간의 불화까지 짐작하게 됩니다. 또한 다른 복음에서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식에 그분을 잡으러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연관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생각을 다시 생각하면 그분의 가족의 입장에서 아들이 나선 길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상식은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한 다짐을 나타내는 듯하고 가족의 연을 끊고 더 큰 일을 하려는 이의 결심으로 들리지만 그의 어머니의 입장이라면 이 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들의 이야기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자신이 나선 길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가 되고 가족이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그 아들의 길을 이미 알고 있었던 어머니에게 아들의 이야기는 슬픈 이별의 선언이 아니라 하느님 뜻의 실천이고 예언의 완성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들을 신학교에 보냈다고 인생에서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어디있습니까? 오히려 아들이 응답한 그 길에서 주님의 길을 곧게 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부모와 형제들의 바람이라면 그 아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하여 가족을 찾기 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들을 더 큰 가족으로 손을 잡는 것에 기뻐하고 공감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상식이라는 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감성을 무너뜨릴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결별과 정리의 삶이 아닌 함께와 바른 길로 모두가 함께 가야 하는 사랑의 길입니다. 그 길에 예외가 있을 수 없고 그 길에 가족 아닌 이가 있을리 없습니다. 아들의 선언은 성모님이 고백했던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형제와 부모가 하느님 안에서 맺어지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신약'입니다. 그리고 그 신약의 내용은 아들의 사랑처럼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예외가 될 수 없는 가족의 기쁨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십자가의 마지막까지 따라나선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또 그 어머니를 교회에 맡긴 아들의사랑이 설명될 수 없음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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