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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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구원을 주는 이름이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와 같은 가치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분과 일치를 하려는 이들도 있고 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무슨 주문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의 주인께서 그 정성을 보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리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의 존재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고 한결같습니다. 그래서 그 때도 지금도 우리는 그분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런데 성경 속의 예수님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예수님이 모순과 같은 행동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아는 것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들을 떠나 계시기도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그러기엔 예수님의 능력이 너무 크고 사람들은 그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들의 노력은 눈물겹도록 지극한 정성을 보입니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그들의 정성에 예수님은 거절이나 피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앞에 있는 이들의 어려움은 늘 예수님을 만나면 사라지고 그들은 온전한 삶을 찾게 됩니다. 백성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그들의 슬픔과 어려움을 모른척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그런데도 왜 한사코 숨으시려 하고 사람들에게 당신이 알려지는 것은 싫어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예수님을 알리려 누구보다 애를 쓴 것은 더러운 영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 앞에서 늘 약자의 모습을 보이고 한 번도 그분께 대들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어서 예수님의 정체를 알리려 무진장 애를 씁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막으시고 그들은 누구보다 더 예수님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립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분", "하느님의 아드님" 등 우리가 지금 자주 사용하는 말 대부분이 더러운 영이 성경에서 먼저 언급했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애를 쓴 표현들입니다. 그들은 진실을말했고 어쩌면 증언에 가까운 시도를 한 셈인데 예수님은 왜 그들의 입을 막았을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분을 믿는 것 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오래된 표현을 그분의 이름을 많이 외우고 그분께 기도를열심히 하는 것으로 구원에 가깝게 된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을 때 우리의 구원을 열어 놓으신 방법은 당신의 사랑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방법이었습니다. 곧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을 기억하고 우리가 스스로 그 사랑을 실천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을 알고,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께 매달리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구원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더러운 영들의 의도는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과 전혀 다른 분임을 알리려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의도대로 예수님을 대하는 듯 하기에 조금은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대단한 분이 될 수록 우리는 그분을 따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총은 무조건 특별하고 특수하다는 생각은 선택됨의 특별함을 선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음을 보여주신 것이고, 그 기적의 수혜자들은 그저 자신의 삶을 되찾은 것 뿐입니다. 그들의 구원은 여전히 그들에게 목표로 남았고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신 한 사람의 기억으로 자신들도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해야 할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보고 본 받는 것과 그들이 스스로 받은 것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같은 몫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심판자로 행동하셨다면 우리는 그분의 이름에 매달려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사랑하셔서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 방법을 구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당신과 같은 한 사람의 사랑을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알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 창조의 말씀이심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께 매달리는 것은 더욱 심한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분의 이름만큼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그분이 이름이 우리 안에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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