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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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지나고 한 주간이 지났습니다. 부활 팔일 축제는 예수님 부활의 증언과 함께 실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모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과 그 중 유독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한 인물을 주목합니다. 


 

그의 이름은 '토마스'입니다. 의심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불행한 제자이지만 가장 용감했던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따르며 '우리도 죽으러 갑시다'라고 외쳤던 사람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제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의 처지는 어땠을까요? 오늘 복음의 시작은 제자들이 토마스의 혼란 없이 예수님을 만난 듯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복음 선포의 사명까지 받아든 제자들은 주님의 평화의 인사와 함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곧바로 그 자리에 없었던 불행했던 제자, 곧 토마스를 보여줍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을 새벽녘에 세 번이나 모른다고 말했던 베드로의 이야기만큼 기억에 남아있는 토마스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는 말씀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씀을 사도의 이름과 연결시켜 기억합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사실 다른 제자들의 숨겨진 모습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바로 어제의 말씀이었던 마르코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뵙고 돌아온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도, 또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주님을 만나고 돌아온 동료들의 말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다 자신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불신과 완고함에 대해 꾸지람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복음 선포의 사명을 그들에게 주십니다.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으나 그도 다른 제자들과 다름 없었던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불신과 완고함이 예수님의 부활에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복음에는 구세주를 보고도 믿지 못했던 세례자 요한도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사명이 부족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었듯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도 당신의 모든 것을 돌아가시기 전 하셨던 모든 것 그대로 두시고 유지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실망스럽지만 그것이 주님의 뜻, 곧 세상 구원을 이루시려는 하느님의 뜻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끝까지 믿으셨습니다. 토마스의 의심은 합리적이고 그럴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님의 죽음은 확실했고 그들은 그 죽음에서 자신들이 듣고 본 모든 것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정말 부끄러운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부정하고 버렸다는 것이 더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사랑은 변함 없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은 그래서 주님의 생명에 관한 사건만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 속에 우리의 실망스런 모습에도 희망이 살아있고 온전하다는것을 뜻합니다. 물론 토마스에 의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받았고 죄에서 일어났음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며, 우리가 믿고 선포하며 따라야 할 행복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그분처럼 사랑하는 이에게 더 이상 죽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자비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누군가의 부끄러움이 아닌그분의 사랑을 보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이 실제하는 것이며 우리의 부끄러움은 그 사랑에 눈녹듯 사라져 버리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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