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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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듣기 : https://youtu.be/V4z9c0wIekc


 

신앙인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으며 보이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우리에게 자주 혼란을 가져오고 우리의 믿음을 망각하거나 착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하느님도 그렇게 '증명'되기를 바랍니다. 현실에서 하느님을 증명해보라는 요구를 받아 본 적이 오래되었지만 그것은 세상이 하느님을 알고 있어서라기 보다 더욱 현실적인 면이 늘어서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겁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에서 하느님을 찾습니다. 우리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을 바꾸어 주시거나, 혹은 어둡고 암담한 미래의 어떤 희망을 주시는 분으로 하느님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매달릴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절실하지만 비 현실적인 분으로 우리에게 등장하십니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은 현실에 꼭 필요한 분이지만 비현실적인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늘 하느님에게서 떨어진 듯 보이고 그것으로 사람에게 다가가면 사람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희망을 쥘 수 있다는 확신을 믿음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거기에 더불어 생기는 현실적인 부분도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부분에서 무신론을 펼칩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말입니다. 또한 그렇게 사람의 불행에 손을 놓고 있는 하느님이라면 믿지 않겠다고도 말합니다. 이래저래 하느님은 현실과 너무 멀리 떨어져 계신듯 보입니다. 
 

복음 속 예수님 앞에 와 있는 왕실 관리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의 걸음을 청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그분의 능력이라면 아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님 앞에 와 있는 이유는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지만 동시에 가능하지 않은 일을 했다는 이 놀라운 재주의 사람에 대한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관심과 호기심들 속에 예수님의 존재는 우리가 기대하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의 의미로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복음 속에서 이 왕실 관리의 청을 거절하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의 아들이 나았으므로 주님께서 그의 청을 물리치지 않았다고 보이지만 사실 예수님은 그의 청이 가진 우리의 관심사 곧 '보이는' 표징을 거절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청은 들으셨고 그분을 찾는 이들의 관심은 거절하신 셈입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고 우리가 그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찾는 것은 '믿음'이라는 단어와는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들을 하는 중입니다. 이 아버지처럼 소문 속의 희망이라도 잡아야 할 만큼 절박한 세상의 울부짖음과 후회의 소리들도 듣습니다. 그 소리를 하느님이 외면하실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비로운 힘과 놀라운 능력으로 고쳐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경계해야 합니다. 
 

복음의 아이는 집에서 열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종들이 서둘러 주인에게 알리기 위해 내달린 길에서 전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고, 아들은 집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은총을 받았습니다. 결국 누구도 예수님의 기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통했고 가족들은 다시 집에서 행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 정성을 다하는 이들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의 이 간절한 상황 속에 지녀야 할 마음이 희망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돌려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기적으로 아버지를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그 기적들은 하나같이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사랑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세상 한 가운데 가장 깊은 곳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분의 자녀이고 우리의 사랑이 되살아나 모두를 걱정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디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말입니다. 누가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간절하게 행동하는가에 하느님은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집으로 돌아가 회복한 아들을 만난 아버지의 기쁨이 온전히 지켜진 이 숨겨진 사랑의 기적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리라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의 사람들을 잘 살피고 함께 하루를 또 일주일을 잘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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