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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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듣기 : https://youtu.be/c-HQSM5jZsc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과연 피곤하고 힘겨운 일인가?'라는 주제는 꽤 자주 마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누구나 이 문제에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옳다'라고 대답해야 함을 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답으로 '아니다'라고 말하면 이내 곤란한 문제가 닥쳐오고 오히려 '맞다'고 대답하면 세상 살이는 더 이상 이 문제를 묻지 않습니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런가 하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보여주신 모습은 그 답이 되지만 우리의 외면을 당하시기 일쑤입니다. 예수님은 너무 자유로우셨고 또 그분은 언제나 사랑이 넘치셨던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모습에서 미소를 찾기 어렵고 매사 진지한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 그 때 사람들의 행동에는 예수님으로부터 느꼈던 기쁨과 즐거운 발걸음이 항상 함께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율법과 예언서를 폐기하시거나 아니면 완전히 새로 쓰시는 분처럼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느님은 자신들이 믿고 배워왔던 하느님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같은 하느님을 믿으며 살아온 이스라엘.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그리고 다른 날은 세상 안에서 자신들의 부족함을 느끼며 마치 어떤 상황과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했던 이들과 달리 예수님은 같은 처지에서도 너무 편해보이셨고 모든 것을 나누며 사셨습니다. 누구나 만나셨고 누구에게나 하느님을 말하셨습니다. 


 

그분이 다니셨던 곳과 그분이 만나셨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편견이 들 수도 있지만, 예수님을 향해 몰려 왔던 사람들과 그분의 식사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주님은 누구나 만나실 수 있었던 또 만나고 싶었던 분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형의 신자의 모습이었고 하느님의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고난 받는 하느님의 종'이아니라 '행복한 하느님의 백성'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람인듯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끊임 없이 의심했고, 모함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지만 부족한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바람대로 살기엔 너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가르치고 자신들은 그 고단한 삶에서 의를 행함으로서 벗어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하고 나이 든 부모님을 돌봐야 하지만 하느님을 섬기는것이 더 중요하기에 그들은 타고난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부모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았던 이들입니다. 그나마 권력과 명예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을 경계 하십니다. 오히려 당신은 이를 완성하러 오셨다는 표현으로당신의 삶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폄훼하며 오해하고 곡해하는 이들의 의도를 나무라십니다. 예수님이 사시는 것을 율법과 상관 없는 듯 말하는 것을 경계하시고 오히려 그 모든 율법과 예언서가 사랑이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살기 싫기 때문이다라고 잘라 말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그렇게 하느님 말씀을 피했고 모른채 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상한 오해를 받는 처지에 있지만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가치는 하나이고 우리는 그 말씀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그 말씀대로 사는 것으로만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은 여전히 일점 일획도 사라질 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기억하고 살기는 그리스도처럼 사랑하여 그 율법의 의미를 제대로 밝혀내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율법을 이해하고 하느님 말씀으로 세상을 행복한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율법을 죄의 기준으로 만들어 그 위에서 간당 간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새겨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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