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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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에 드러난 구세주의 존재.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원의 시간이 되었을 때까지 이스라엘은 수천년을 기다렸다 말합니다. 하느님의 예언은 결국 이루어졌고 예언을 이루기 위해 하느님의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과 실행이 사람들이 머리 속으로 계산한 것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공현은 숨겨진 그분의 탄생과 달랐으나 여전히 숨겨진 것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을 이스라엘 전체가 기다렸던 것과 달리 그분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도 그분을 따르는 이들의 모습은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가장 처음 그분을 따랐어야 할 사람은 다름아닌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발걸음은 요르단강에서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그는 자신이 있던 곳에서 자신들의 제자들과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언에 움직인 것은 그가 아닌 그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습니다. 


 

광야에서 살던 세례자 요한의 거처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는 '광야의 성자'였고 그곳에서의 삶이 계속 이어졌음은 이후의 내용에서도 소개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활에 들어서시며 사람들의 고장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곧 예수님이 사람들 사이에 회당을 세우고 별도의 신앙생활을 하신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함께 하시며 사람들의 자리에 들어가시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묻습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그들의 원래 스승은 광야에서 세상과 따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느님의 뜻만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하느님의 어린양은 어디에머물고 어떻게 살고 계실까 궁금했을 겁니다. 당연히 그들의 기준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와서 보아라.”


 

듣기에 멋지게 들리는 이 이야기 후에 예수님과 함께 한 이 일행이 들어선 곳은 사람들의 세상이었을겁니다. 세상을 떠나서 하느님 안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들어서서 그들이 사는 동네에 머무르고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만나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시고 살아가시는 새로운 스승의 모습이 제자들에게 어떻게 여겨졌을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그들이 본 것은 이미 살아왔던 현장에서 이미 알고 있던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특이한 선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사랑으로 자신을 가득채운 사람. 곧 그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고 우리가 세상에서 구분했던 사람들의 여러 모습들을 전혀 가리지 않고 대하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세상을 벗어난 자리에서 하느님과 자신만 마주하며 살았던 옛 스승과 달리 사람들과 함께 하늘을 보며 살면서 살아가는 이 사람을 스승으로 여길 수 있을지 고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 중 안드레아의 행동은 그의 느낌을 짐작케 합니다. 그는 그의 형에게 가서 주님을 만났다고 소개합니다. 그의 형은 다름 아닌 베드로이고 그는 하느님은 사랑하지만 그 스스로 자신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동생이 형을 주님께 데리고 갔다는 의미는 그 형에게 희망이 되어줄 분을 만났다는 뜻이 됩니다. 삶의 현장에서 거칠게 살며 자신은 마음은 간절해도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하다 생각하는 이에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떠올리게 하는 분이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전해야 할 성탄의 메세지도 그러해야 합니다. "이곳은 세상과 다릅니다"라는 메세지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하느님의 뜻이 있고 그 거칠고 어려운 삶에도 하느님의희망이 언제나 살아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삶을 하느님의 뜻으로 살고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생활이어야 합니다. 


 

깨끗하고 티 한점 없는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여기고 세상의 때를 계속 벗겨내려 애를 쓰는 이들에게 실제 예수님은 여전히 믿기 힘든 분입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주님은 우리의 현실에 계셨고 그래서 그분의 기준도 우리 삶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와서 보아라.”


 

그분의 자리에 아직 눈을 감은 사람들은 기억해야 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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