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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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를 찾아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수많은 인물들 중에 어딘가 숨어 있는 한 사람을 찾는 이 게임에 사람들은 순간 몰입하며 한 쪽부터 자세히 살피기 시작합니다. 모든 문제에는 월리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게임에 우리가 찾는 캐릭터가 없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사람들이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를 모르고 찾는 이들의 수고는 헛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그 답을 찾을 것이고 계속 그 그림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를 묻는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은 이 문제의 답이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없어서 여기도, 저기도 특정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라고 '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상상 속에서 사람들을 이리저리로 흔들어 댑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머리로 그리고 기대하는 하느님 나라는 결코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그들 안에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으 찾아온 하느님께 방한칸의 여유를 내 줄 수 없는 닫힌 마음을 가지고있었고, 내내 하늘만 쳐다보며 있지도 않은 나라의 상상도를 펼치고 사람들에게 지옥의 무서움을 가르치며 하느님께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묻고 찾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언제 오는가?' 하고 말입니다. 눈 앞에 하느님 나라를 보면서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은 다시 찾아오실 예수님도 볼 수 없게 됩니다. 당연히 그들에게 실제 예수님은 제외한 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결국 그들이 당신을 눈 앞에서 치워버리면서도 또 다시 당신을 찾을 후손들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하십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구원을 간절히 청하면서도 정작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도, 사람도 되기를 거절하고 하느님을 거부하면서도 그분을 찾는 못난 모습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치워진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찾아오셔도 같은 눈과 마음을 가진 이들은 전혀 다른 곳에서 또 전혀 다른 사람에게서 터무니 없는 구세주를 찾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정작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아들은 그들 스스로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겁을 주며 치워버리면서도 말입니다. 


 

재림 그리스도를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혹은 자신은 그리스도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럴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구세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에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한 이래로 사람들이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을 향해 진지하게 매진합니다. 그들의 진지함을 그저 거짓으로, 또 그들의 잘못을 들추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필요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에게 증거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사람들이 헛갈리고 방황하는 이유는 그들의 그 진지함과 확신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전혀 그리스도를 볼 수 없는 터전에서 시작한 이들에게는 좀 더 진지하고 확실한 독특함이나 유일함이 자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틀린 문제지에서 답이라 우겨대는 이들에 의해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들이 안타깝고 불행하긴 하지만 그들을 다시 돌려 내는 것 외에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그 구렁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진리로 향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단맛을 약속하는 구원을 따랐고 그것이 허물어져도 그들은 '진짜'를 찾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진짜 그리스도는 이미 버려진 후라서 그들이 다시 꺼내들고 따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도와주세요'라는 이의 외침을 외면할 수는 없어서 교우들에게 이 헛된 짓들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이들에게, 듣지 않을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 문제 자체가 잘못되었으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들이 찾고 있는 그 분은 거기에도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분은 그 공부를 권하는 이들이 이미 죽여 사라지게 했으므로 그들에게서 그분을 찾는 것도 또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는 것도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추수의 밭'이고 알곡이 넘쳐난다는 그들의 표현이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데려간 이들이 알곡이라는 기준은 세상의 기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목마름에 발길을 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하는 교회에도 진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들 우리가 그들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도 하느님의 나라도 아니니 말입니다. 


 

오히려 성경이나 교리적 문제보다 그들이 그리 따뜻하게 느꼈던 그들의 또 하나의 수단, 곧 친교가 우리 안에 부족함을 탓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고민일 수 있다는 것, 곧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보여주셨던 그 사랑이 우리에게 부족하다는 것에 더 고민하고 노력하길 권고합니다. 물론 저의 숙제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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