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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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들. 세상이 불안한지 자주 종말에 관계된 종교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교회 내에 문제가 되어 있는 곳에서도 SNS등의 메세지가 도착하기도 합니다. 하늘나라에대해 궁금하긴 한가 봅니다. 구원을 약속하는 이들과 무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결속력을 보이고 자신들이 구원이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들 외에 다른 이들은 안타까운 미래를 예상해야 합니다. 
 

언젠가 사람들은 예수님께 하늘나라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 질문은 '구원 받을 사람이 적다'라는 말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에 긍정하듯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또 다시 하늘나라에 대한 사람의 짐작이 등장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 나라는 모두에게 '행복'을 선사할 것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음식도 모든 생활도 즐거우리라 말합니다. 우리가 꿈꾸고 서로 약속하는 구원의 나라도 바로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아름다운 상상에 정신이 드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 주십니다. 


 

이야기 속 하늘나라는 분명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화려하기 그지 없는 잔치의 자리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그 식탁은 음식과 촛불, 그리고 의자만이 가득합니다. 누구도 그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 집에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잔치에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존재하는데도 누구도 그 집의 문 앞에 도착한 이는 없습니다. 모두가 주인을 만날 때면 그들의 삶을 신세지고 있노라고 인사하고 언제나 부르시면 달려가리라 약속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정작 그 나라는 아무도 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이야기하며 누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 집 앞이 완전히 비어 있음을 들려주십니다. 심판이 이렇고 저렇고, 또 천국이 이렇다 저렇다, 지옥과 천국의 차이를 말하며 수도 없이 떠들었지만 정작 그 문 앞에는 심판받을 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의로움을 말하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지하며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누구도 실제로 그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그들은 저마다 바쁩니다. 그리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들은 자신을 위해 애를 씁니다. 그들은 밭을 샀고, 겨릿소를 샀으며 장가를 들었습니다. 그 모든 일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에게 하나같이 양해를 구합니다. 


 

자신과 하느님 앞에 그들의 선택은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자신보다 하느님이 우선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것은 모두가 행복한 천국보다 내가 즐거운 것이 더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구원을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하는 약속은 구원이 하느님 안에서 선하고 의로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드는 것보다 각자 느끼는 행복의 서로 다른 가치들이 혼재되어 있는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복된 미래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심판자가 세워 놓은 틀 속에 자리할 때만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곧 사람들은 노력으로 그 틀을 사서 그 나라를 차지하려 애를 쓰는 셈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집 앞이 그리고 그 집으로 가는 길이 비었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우리가 말하는 구원은, 하느님은, 사랑은 과연 실제일까요? 아니면 있지도 않은 곳을 향해 우리가 거짓말에 속아 버린 것일까요? 


 

집은 분명 있고, 잔치도 차려졌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집을 향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가는 방향이 그 집이 아닌 자신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하느님의 세상이 아닌 우리가 세상에서 행복했다고 말해왔던 그림대로 죽음 이후를 그려 꿈꾸고 그것을 들어주리라 약속하는 이들의 말에 낭떠러지로 향한 넓은 길을 함께 걷고 있기에 우리는 그 집을 볼 수도 없고 그 문을 구경조차 할 수 없습니다. 곧 심판하시는 분을 만날 수조차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겠다고 말하고 기도하며 봉헌과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그것이 천국으로 향한 길이 아니면, 그래서 그 돈과 정성 모두가 이 세상 어느 곳에 쌓여 있다면 우리는 허망한 죽음 뒤의 길에서 끝도 없는 낭떠러지 앞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쳐 쓰러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결국 우리가 비웃던 이들, 상상도 못했던 이들이 차지하고 누구에게나 열려진 그 음식과 삶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당신에게 말을 건넨 이의 질문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던 이스라엘이 걷는 길이 그러했고, 그 사람들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말하는 '반성'이나 '통회'보다 훨씬 메세지의 강도가 셉니다. 이야기 속 초대를 거절한 이들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자신의 밭과 겨릿소와 신부에게서 방향을 돌려 주인의 집으로 향하는 방법 뿐입니다. 자신의 것으로 아무리 많은 소출을 거두고 그것을 주인의 은혜라 말해도 늦어 버리고 맙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우리를 위해 주인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런 짓을 많이 합니다. 하느님을 알고 믿는다는 이들은 모두 구원을 꿈꿉니다. 그리고 모두가 초대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과연 우리가 지금 그 집을 향해 가고 있는지그 집 앞의 풍경이 몹시 궁금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식당에 '노쇼'를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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