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7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기념일

by 별지기 posted Sep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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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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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죽음"이고 그 죽음은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이해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요즘 세상에서 이 말씀은 전혀 가치가 없거나 아니면 완전히 세상의 이론과 결별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밀알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자기 죽음"의 가치를 이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처음부터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씀입니다. 


 

"땅에 떨어져 죽음"은 세상에 사는 것은 나의 결정과 나의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 초점이 나를 향하지 않고 세상 모든 것을 향해 있음을 말합니다. 내 곁의 사람에게 주목하고 내 곁의 생명과 환경에 주목하여 그것을 위해 나의 시간이 정해지고 나의 할 일이 정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내가 없는 듯' 살아가는 것이 땅에 떨어진 밀알이 죽는 경우입니다. 도무지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듯 보이는 삶. 그리고 실제로도 자신을 위한 것에 여지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반대'를 거듭합니다. 그러면 누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삶 자체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가 수명을 재촉한다고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삶이란 누구도 해서는 안되는 일을 재촉하는 일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곧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 몸에 좋지 않은 것을 골라 섭취하거나 자해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지 않기를 각오하고 적당히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예수님은 잘라 말씀하십니다. 인생에서 자신이 중심인 사람은 그 조금의 여지가 자신을 망칠 것이라는 것을 먼저 알기 때문에 평생 그 몫을 탓하며 살게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실천은 십자가로 드러나고 우리는 예수님을 보며 우리가 듣는 이 밀알의 의미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의미와 내용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목표로 살지는 않으셨지만 그럼에도 우리 외에 당신을 돌보지 않으셨기에 그 죽음의 나무에 오르기까지 온전히 사랑하셨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 사랑은 세상과 우리를 향해 있었고 그 놀라운 능력이 당신을 위해서는 쓰여지지 않았음을 압니다. 
 

밀알은 그렇게 땅에 떨어져 죽었고, 우리는 그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열매의 죽음과 삶은 우리 각자에게 늘 맡겨져 있습니다. 그 결정이 곧 믿음의 증거가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무엇을 믿고 사는가 말입니다. 그리고 그 정확한 판단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해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랬듯 말입니다. 


 

밀알. "죽음"이란 말의 모든 것이란 신학생 때의 이해가 다시 떠오르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