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5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by 별지기 posted Sep 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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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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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되기 전 시몬. 그가 주님을 만난 자리는 자신의 배였습니다. 주님이 자신의 배를 먼저 보시고 자신의 배에 올라타시고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엄청나게 잡아올린 물고기를 보고 난 후에도 시몬은 주님께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참 고집 센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고집이 자신에 대한 자신의 판단 때문이라면 그것을 우리는 '겸손'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들려주시고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에 그는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서 있을 때 하느님께 자신을 떠나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자신이 죄인임을 스스로 알고 사랑하는 하느님 곁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가 시몬이었습니다. 곧 우리 믿음의 기초가 그에게 있기에 신앙의 근본은 겸손일 수도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자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를 부르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를 몰라서 예수님이 그 곁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알지만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려 주십니다.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베드로가 살았던 세상은 위인이 세상을 구하고 의인이 하느님의 은총을 차지하는 세상이었을 겁니다. 그 스스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도 있는 세상에 살면서 주님은 그에게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이야기하십니다. 사람을 낚을 밑천이 없는 시몬이었으나 예수님은 그가 가장 좋은 이유가 되리라 이야기하십니다. 


 

결국 그가 우리의 첫 교황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지켜낸 사도들의 역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었으나 그리스도의 진실을 알아보았고, 그 스스로 약하고 비겁한 모습을 우리에게 남겼으나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증언하며 이 세상을 두 어깨에 맡아 멍에를 짊어졌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베드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여전히 세상은 완덕을 요구하고 완벽함으로부터 모든 것이 흘러나오는 '낚시'를 말하지만 우리가 가진 밑천은 베드로일 때 기적도 꿈꿀 수 있게 됩니다. 


 

'성한 것'의 세상을 살며 '성하지 못한' 채로 하느님을 전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일지도, 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이 세상은 그것을 요구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2천년 전 부터 시작된 구원의 그림은 우리의 상상력과 달라보입니다. 그렇게 시작되었고 이어진 우리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첫 부르심이었고 우리가 지켜야 할 기준입니다. 


 

이 시대의 시몬들도 여전히 주님에게서 뒷걸음질을 치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걱정은 그런 이들을 쫓아가 찾아내시는 주님의 걸음을 교회가 거듭하지 않는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구원하려 들겠습니까? 


 

여전히 믿을 것은 주님 밖에 없는 듯 보입니다. 알면서도 무너진 이들에게 그 소중한 '낚시질'을 기대하는 것은 주님 뿐이실테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