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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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여인의 몸에서 난 이들 중에 가장 위대했던 사람 '으로 지목하셨던 세례자 요한의 수난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탄생과 성장, 그리고 우리 앞에 나타나 하늘나라의 길을 준비하게 해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제의 아들이었고 시대의 스승들이 모두 부러워한 지도자의 모델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보내셨고, 하느님이 키우셨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 없는 이들'의 대표적인 사람이었고, 그에게서 우리가 지닌 약함을 발견할수는 없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극단적 극기와 고행, 기도를 우리에게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수도생활, 신앙인으로서의 가장 극한의 모델이 됩니다. 그는 도무지 더러운 때를 묻히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정의를 지키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그리 아름다운 장면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것은 그가 왕에게 직언한 때문이지만 그의 죽음은 정의를 지키다 죽은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자존심 때문에 일어난 우연같은 사고였습니다. 


 

그의 목이 쟁반에 담긴 것은 그의 존재를 싫어한 헤로디아의 앙심 때문이었고 그것은 정의로움에 대한 반발이 아닌 사적인 형태의 원한이었습니다. 요한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통치자는 결국 자신의 약속을 거절할 수 없어서 의인임을 알면서도 그의 목을 요구하는 소녀의 청을 들어 요한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완전했던 사람 요한은 가장 먼저 예수님의 존재를 증언한 사람이자, 또한 제일 먼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의심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원한 구세주는 요한조차 종으로 처신하지 못할 정도의 권세를 지닌 분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구세주는 죄인들 사이에서 물 속에 들어와 요한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하느님께 들은대로증언한 요한이지만 그는 그의 말을 스스로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어쩌면 그의 마지막 일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그분이심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습은 여전히 요한과 같은 사람을 바라는 중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많은 이들의 모델은 물론 성직자들의 모습으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도 그리스도보다는 요한의모습이 대부분입니다. 평범하게 살며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사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광야에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서 같을 수도 없는 인생이 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상상 속 그리스도와 가장 비슷했던 요한은 결국 전혀 뜻밖의 죽음을 당합니다. 


 

요한의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한 성인들의 숭고한 죽음과는 많이 달라보입니다. 그의 죽음은 하느님의 뜻을 지킨 사람의 죽음보다 권력자들이 자신 앞에서 얼마나 잔인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권력자와 사회의 비정함에 희생되는 의인의 죽음으로 보입니다. 


 

그의 죽음 뒤로 소리 없이 당신의 길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은 그도 상상하지 못한 구세주였습니다. 구세주는 우리 안에서 살며 우리와 같은 밥을 먹고 세상 살이를 함께 하셨기에 그분의 죽음은 요한처럼 홀로가 아닌 백성들 사이에 십자가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가 본 그 죽음이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한의 죽음을 기억하는 날. 그의 죽음은 하느님의 정의를 세상에 보여준 사건이 되지 못했음을 봅니다. 오히려 세상이 만든 공식 안에서 결국 세상 권력에 희생된 그의 죽음은 세상에서가장 유명했던 안타까운 이의 죽음이었을지언정 그 홀로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누구도 그처럼 살지 못했으므로 그의 죽음도 세상 단 한사람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누구나 함께 한 삶의 주인공이었으므로 우리는 그분의 죽음에 함께 죽을 수 있었고 부활도 함께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했으나 주님의 길을 알지는 못했던 하늘나라의 가장 작은 이보다 못한 삶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잔상으로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처음만난 순간 그분을 따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랬다면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다해 그리스도와 함께 행복한 신앙인의 모델이 되었을텐데... 생각할 수록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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