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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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듣기 : https://youtu.be/iXYIsOgiwCU


 

먼길에 지친 예수님이 우물 곁에 앉아계십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길을 떠났고, 예수님은 혼자 계셨습니다. 
 

그 때 두레박을 가진 여인이 물을 뜨기 위해 우물로 다가옵니다. 그녀는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과 말 조차 나누는 것이 금기시 되던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 여인은 없는 것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저주 받은 듯 기구한 운명의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모두 알고 계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주저 없이 말을 건네십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사마리아 사람. 그들은 이스라엘과 등을 돌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 속 사연으로 또한 그들 나름의 문화를 이루며 이스라엘에서 배척받은 같은 핏줄의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이방인보다 못한 사람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은 그들에게 붙여진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할 정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 그리고 그 속에서 또 불행한 삶을 살던 사람에게 이스라엘 사람 예수님은 도움을 청하고 계십니다. 


 

마치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사람의 처지가 되신 예수님이시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이 깨어지고 이스라엘 사람이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 사람에게 먼저 굽힌 셈입니다. 


 

복음 속 예수님은 결국 제자들과 함께 그 마을에 머물게 되십니다. 사마리아인의 고을에 이스라엘 사람이 신세를 지고 그 안에서 야곱의 후손과 이스라엘의 후손이 하나가 됩니다. 가능하지 않은 일이고 그것을 위해 서로 무엇인가 정리되어야 할 것 같고 준비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상황을 예수님이 먼저 움직이시면서 상황이 해결되어 버렸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네고 물을 청하시는 예수님은 구약, 곧 이스라엘이 야곱이었던 시대가 아닌 이스라엘과 사마리아가 나뉘었던 자리에 계신 하느님이었습니다. 곧 그들은 같은하느님을 믿으면서도 같은 조상조차 따로 섬기는 중이었습니다. 이 차이는 지금까지도 지속될 만큼 깊은 관계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지낸 고난의 시대에도 사마리아는 그대로 남아있을만큼 둘 사이는 견고한 담을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이셨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졌던 약속 속에 태어나셨고 자라셨으며 그들 안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모든 일을 겪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틀 속에서도 세상을 보고 계셨고 가장 가깝지만 멀었던 사마리아인에게 당신 구원의 범위를 보여주십니다. 또 복음 곳곳에서 등장하는 이방인들의 존재는 하느님이 바라시는 이스라엘의 믿음과 삶을 가르쳐주는 표징이 되기도 하고 주님의 인정을 받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이 색다른 것은 이방인들이 지닌 믿음의 인정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당신 구원의 범위를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느님이 직접 경계를 넘고 담을 허물어 세상을 구하시려 하신다는 것이 드러난 셈입니다.  


 

주님은 우물물 한 모금을 원하셨고, 여인에게 당신이 가지신 '생명이 물'을 주시려 하십니다. 축복이 끊어진 야곱의 후손 사마리아에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주님은 몸소 목마른 이의 모습으로 드러내시고, 불행이 쌓여 있는 한 여인에게서 그 고리를 풀어 내셨습니다. 


 

가끔은 강론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 강론의 끝도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무런 말도 못했던 듯 이 이야기의 내용을 전달 받는 이들이 주님의 메세지를 제대로 알아듣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라 생각하는 사람, 또 사마리아에 머물러 살던 사람. 그들 모두가 주님의 행동과 말씀에 가르침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필요한 생명의 물을 얻기 위해 서로 마실 물을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에서도 여전히 이스라엘과 사마리아, 하느님의 백성과 이방인이 분명 존재합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필요한 물 한 모금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사랑을 드러냅니다. 하느님 사랑이 담긴 생명의 물이 우리를 가리지 않고 흘러 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혹시 그런 장벽 앞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단단한 벽이 허물어지는 한 주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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