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강론 듣기 : https://youtu.be/traL-nDrMdg
우리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하느님의 계명 아래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계명을 '십계명'으로 기억하고 지켜가는 사람이 있을테고 또 오늘 등장하는 계명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생각하고 살아갈 때 이 계명을 어떻게 기억하고 사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꼐 질문한 사람은 율법 학자입니다. 그가 주님께 물은 것은 계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말하는 또 다른 이름인 계명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주신 '지켜야 할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전해졌고 이스라엘의 정신이 된 이 율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많은 것이 결정되는데 예수님에게 계명을 물은 것은 궁금증이나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체성을 물은 것입니다. 묻는 이는 스승이라 불리는 사람이고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율법 학자입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예수님의 대답은 십계명 중 어느 하나가 아닙니다. 그 모든 계명의 핵심이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계명에서 십계명의 정신과 내용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곧 하느님이 우리의근본이심을 알고 우리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복음에서 벗어나 우리는 주님이 전해주신 이 말씀에 따라 또 하나의 계명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헤아리신 구약의 계명이 아니라 예수님이 새로 세우신 '새 계명'입니다. 이 구약의 계명이 예수님에 의해서 다시 다른 말로 전해지는 것이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현실이 되는 원리가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에 있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십계명에 드러나는 우리의 수많은 잘못과 실수가 바로 잡혀지는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시는 예수님 곁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에 함께 하는 이 율법 학자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이고 이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이납니다. 무엇을 하건 어디에 있건 간에 말입니다. 나의 근본을 잊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늘나라를 이 세상에 이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