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의 소프트웨어

 

기도에도 맛(味)과 빛(色)과 향(香)이 있습니다.

 

기도가 형성된 과정과 배경, 목적과 내용에 따라 고유한 기능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 구별하고 활용하는 수준에 따라 기도하는 능력도 달라집니다.

 

풍미 가득한 기도를 무미하게 바칠 수도 있고, 향기로운 기도를 악취가 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묵주기도를 왜 바치십니까?

 

내 삶에 무조건 기쁨이 가득하고, 가족끼리 화목하며,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기라고 기도한다면 앞뒤가 바뀐 기도입니다.

 

오히려 기도하니까 죽이고 싶던 마음이 참을만해지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정신병에 걸릴만한 상황에서도 안정과 여유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를 제대로 하면,

 

막다른 골목에 몰리거나 낭떠러지에 서 있어도 우리 삶은 흔들리지 않고 멀쩡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잘못 바치기 때문에 기도가 지닌 영적인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고,

 

기도가 내 삶에서 공회전합니다.

 

이러다 보니 기도해야 한다는 자발적인 생각보다 자꾸 귀찮다는 마음이 커지고,

 

기도와 관련된 스트레스가 증가합니다.

 

묵주기도는 우리 가톨릭교회의 일상기도 중에서 대표적인 기도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이지만, 많은 신자가 가장 지겨워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여러 신자가 모이면 “꼭 5단 다 바쳐야 하나?”하고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가끔 튀어나옵니다.

 

묵주기도의 기쁨이 무엇인지, 어떻게 바쳐야 묵주기도가 작동하는지 모르는 신자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묵주기도가 그냥 생활 습관으로 굳어버리는 경우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무작정 하루에 몇 백 단씩 바치면서

 

뿌듯해하는 사람에게 “기도하니까 기쁘시죠?”하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할 줄 모르면서 기쁜 것은 ‘마약’에 중독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아편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매일 바쳐야 하는 묵주기도를 “드라마 보고 하자.”했다가,

 

그 다음엔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아야 하니까, 뉴스 보고 할까?”,

 

그 다음엔 “에이! 자기 전에 하지 뭐!”하면서 자꾸 미루게 됩니다.

 

묵주기도 바칠 때 지향이나 기도목적을 사도신경 통해 깨끗하게 만들어야

 

이런 악습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이 결합되어 있는 묵주기도의 실용적인 기능을 연구해야 합니다.

 

묵주기도 할 줄 모르는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정상적인 신앙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다못해 반찬 몇 가지를 하더라도 음식 궁합을 생각해서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큽니다.

 

이런 이치와 마찬가지로 일상기도도 여러 조합을 통해 우리 영신을 좀 더 효율적으로 단련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그리고 사도신경으로 구성 조합된 기도가 바로 ‘묵주신공’입니다.

 

기도문들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맛(taste)과 빛(color)과 향(aroma)을 버무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우리 속에 잠복해 있는 세속적인 모든 고정관념이나

 

나쁜 마음들을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구원하셨고 심판하신다는

 

신앙의 틀로 정화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를 시작하면서 바치는 사도신경 안에 내 일상이 들락날락하고,

 

사도신경이라는 신앙의 틀이 내 행실의 잣대 역할을 하면서,

 

내 인격을 신앙으로 정돈해야 사도신경을 제대로 바친 것입니다.

 

이런 기능이 발휘되지 않는다면, 묵주기도를 올바르게 시작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도신경의 영적인 장치들이 내 일상의 많은 유혹을 분별하도록 만들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일관된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진정한 신앙의 규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도 우리 지향이나 기도목적을 사도신경을 통해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기적이거나 죄악적인 소망도 제거해야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매 단 첫 머리에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성경과 서로 융합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치는  모든 현의(玄義), 즉 환희의 신비와 빛의 신비와 고통의 신비와 영광의 신비는

 

복음의 요약이라서 궁합이 잘 맞습니다.

 

이밖에도 매일미사의 독서와 복음을 주님의 기도와 섞어서 바치는 방법을 병행하면

 

상승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 통해 내 삶을 분해․재조립 반복해야 묵주기도의 참맛 알아

 

그리고 묵주기도에서 주축을 이루는 성모송

 

하느님을 만나는 ‘환희’와 예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고통’과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 지는 삶을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상의 현의로 보여줍니다.

 

이 흐름이 공식처럼 명확한 이유는

 

요한바오로 2세의 가르침대로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하는 관상’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처참한 지경에서 가장 복된 분이라 칭송을 받았던 성모의 상황에 나를 이입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께 내 삶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영광송

 

내 일상에서 변함이 없는 믿음과 성실과 관련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영광을 돌린다면, 내 현실에서는 배신과 변절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만 합니다.

 

그래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가치들이 내 삶에 자리 잡습니다.

 

이 영광송으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돌리는 마음과 변하지 않는

 

그분의 영광 앞에서 겸손과 성실을 다짐하면서,

 

묵주기도를 끝맺음하는 기능이 작동되어야 ‘영광송’이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기능적인 설명은 묵주기도가 지니고 있는 수많은 은총의 갈래 중에 일부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지금 바치고 있는 묵주기도의 방법보다 훨씬 더 역동적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한 알씩 넘기는 재미에,

 

또는 달걀도 아닌데 여러 꾸러미를 바쳤다는 뿌듯한 포만감 정도만 묵주기도에서 느꼈다면,

 

묵주기도가 함유하고 있는 영적 에너지를 섭취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묵주기도를 통해 내 삶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묵주기도의 참맛을 알게 되어야,

 

영적으로 건강해지고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 서울 아차산성당 주임, 광진 성인의 모후 Co. 지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