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9일 목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교회의 가르침도, 성경의 가르침도 필요 없고, 그저 손발이 다 닳도록 빌고 빌 테니, 은총이나 잘 내려주고, 성당 나오는 사람들끼리 친목도 도모하고, 서로서로 형제, 자매 예우 해줄 테니, 이를 하느님 나라의 예표라고 하자는 이들에게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이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길을 택한 이들의 죽음은 과거에 그런 양반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자유로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저 감사히 여기고, 그분들이 못다했던 과업, 지상의 모든 사람들을 전신자화시키는 전교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자고 할 것이다.
세상의 제도나 단체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의 취지가 퇴색되기도 하고, 때로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면, 폐지되거나 해체된다. 2천 년을 넘어가는 교회는 어떠할까? 예수 죽고 2천년이나 지났으니, 색이 바래져도 한참을 바래졌고, 변색을 해도 한참을 변색을 했을 텐데, 초대교회와 지금 교회를 비교하면, 분명히 퇴색되거나 변색되거나, 폐지되거나 해체되는 제도들이나 교회내 단체들은 있을지언정, 교회 자체가 해체되지는 않았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예수의 삶을 따라 살아가보려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요한 세례자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날을 지낸다. 케케묵은 정의감 따위에 목숨을 걸고 살아봐야 ‘좌빨’ 소리나 듣고, 부귀영화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이고, 하느님 뜻 따른답시고 바둥거리며 살아봐야, 기껏 성당이나 예배당에서나 성인성녀 대접 받지, 세상 사람들은 누가 성인이고, 누가 성녀인지도 몰라도 잘만 살아가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그런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날이 오늘, 요한 세례자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날이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정신인 ‘정의’를 부르짖었다. 광야에서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선배 예언자들의 전통에 힘입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믿어오고 희망해온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감각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분명히 가려내었다.
하느님의 정의로움, 하느님의 심판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의 삶의 결과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다고 할 만큼, 우리 인간의 눈에는 그렇게 내비치는 죽음이었다. 오늘 복음이 우리들에게 전해주듯이, 철없는 소녀의 춤의 댓가가 바로 그의 죽음이었다. ‘하느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무죄한 이를 희생시키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지, 삶은 왜 이렇게 모순 덩어리인지, 하느님의 정의를 부르짖고,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평생을 편안하고, 안일하게 지내본 적 없었을 세례자 요한이었는데, 왜 이리도 그의 죽음은 우리를 힘 빠지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허무함의 나락으로 빠지게 할까?’ 이러한 물음들을 던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죽음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와 가진 자들, 힘있는 자들의 폭력과 억압이 판을 치는 오늘날,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그를 더욱 더 빛나게 한다. 그의 죽음 자체가 바로 하느님께서 진노하셨다는 것을 드러내는 성사, 바로 « 예언자의 죽음 »이었기에 그러하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2014년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신 날 저녁,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회관을 방문하시면서, 한국의 주교들과 사제들에게 특별히 당부하신 말씀, 지금은 케케묵어 가는 느낌마저도 드는 그 말씀을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면서 강론을 끝맺고자 한다.
«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예언자적인 복음의 증거는 한국 교회에 특별한 도전들을 제기합니다. 한국 교회가, 번영하였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목자들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준보다도 기업 사회에서 비롯된 능률적인 운영, 기획, 조직의 모델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받아들이려는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어 헛되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입니다! (1코린 1,17 참조)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에게 권고합니다. 그러한 온갖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성령을 질식시키고, 회개를 무사안일로 대체하고, 마침내 모든 선교 열정을 소멸시켜 버리는 그러한 정신적 사목적 세속성에서 하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빕니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93-97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