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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향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주교회의로서는 최초로 환경문제만을 다룬 1988년 필리핀 주교회의의 사목교서 「아름다운 우리 땅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에 나오는 “밤새 비가 내린 뒤 흐르는 흑갈색의 강물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 강물이 이 땅의 생명의 피를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복음의 기쁨」, 215항)라는 말씀을 인용하시며 땅으로부터 비롯된 강과 바다의 풍요로움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제2독서에서 고백하듯이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로마 16,27)께서 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인간이 되어 나신 신비를 묵상하게 합니다. 과연 인간은 고차원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뿌리를 땅에 두지 않고서는 하늘로 오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실 수 있었던 까닭도 이 땅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발을 딛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살아가고 힘을 얻을 양식을 주는 땅의 신비는 그래서 원초적인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무작정 남보다 높은 곳에 오르려는 우리의 욕망은 그래서 참 허황된 꿈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고귀하다고 여기는 교만은 성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하느님 육화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도록 이끕니다. 식물의 씨앗 중에는 동물의 위장과 창자를 통과해야만 싹이 트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동물의 식욕을 자극할 맛과 향으로 씨앗을 포함한 과육을 먹게 하여 끝내 먼 곳까지 씨앗을 퍼뜨리려는 자연의 지혜의 결과일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생명 속에 하느님이 심어 주신 섭리가 싹트고 자라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린 더욱 낮아져 땅에 심어져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성탄은 그렇게 이 땅과 자연 속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신비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창조의 기적이기도 합니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향한 하느님의 꿈을 함께 꿀 수 있도록 자연에 깃들기를 바랍니다.


<2017년 12월 24일 대림 제4주일 가톨릭부산 주보 환경과 생명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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