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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동거, 생명의 창문

멧돼지, 고라니, 개, 고양이, 개구리, 나방, 다람쥐, 청설모, 족제비 등등. 이렇게 열거된 동물은 감물생태학습관을 오르내리며 제가 도로에서 마주쳤던 동물입니다. 한적한 시골길,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산을 오르듯이 해발 300m의 감물생태학습관을 가다가 이런 동물을 도로에서 마주치게 되면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가능한 한 최대한 주의를 하지만 이 매번 동물을 피해 완벽하게 운전할 방법은 없습니다. 중앙선을 넘어 곡예운전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큰 동물은 주의를 기울이면 그래도 치일 확률이 줄어들지만, 작은 동물은 참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도로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동물을 죽이게 되는 일(로드킬, roadkill)은 시골의 삶에서 어쩌면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분명 일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시골의 일상이 도시에서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더 넓은 도로와 사방팔방으로 뻗은 도로망을 생각한다면 도시에서의 로드킬은 시골보다 더 흔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시는 이미 인간 이외의 대부분의 동물이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거되지 않은 것은 기껏해야 애완동물 정도일 겁니다. 그렇다면 원래 자연 속에서는 흔한, 그리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동물의 움직임이 더 이상 없는 도시의 삶이 더 건강한 삶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시골에서는 생명과의 불편한 동거의 증거인 로드킬로 끔찍한 죽음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지만 창조된 하느님의 질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생명의 움직임, 그 요동치는 기운을 우리가 느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감물생태학습관이 교우님들에게 드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도움 중 한 가지는 바로 생명의 기운을 목격하고 하느님 안에서 그 신비를 묵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겁니다.



2017년 10월 29일 부산교구 주보에 실린 '감물에서 온 편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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