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극(七克)과 함께하는 사순] 신앙선조들의 삶처럼‘사순적 일상’ 살아가야
   

[칠극(七克)과 함께하는 사순] (1)

신앙선조들의 삶처럼‘사순적 일상’ 살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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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대원 신부(안동교회사연구소장)
 
'넉 사(四)'자와 '열흘 순(旬)'자를 쓰는 '사순'은 그 기간을 40일로 지정한다. 하지만 우리 신앙 선조들의 사순은 꼭 40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일상의 삶이었다. 예수의 고통을 함께하며 죄의 뿌리를 끊어내려고 했던 조상들의 의지는 삶을 수양하는 신앙 지침서, 「칠극」을 통해 계속됐다.

가톨릭신문은 사순을 맞아 신앙 선조들이 교리서로 삼았던 칠극의 정신을 되돌아보고, 사순 6주간 칠극의 일곱 가지 주제별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이웃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 기획이 사순의 첫 단추를 꿰며, 매년 돌아오는 '일상적 사순'이 아닌, 신앙 선조가 살던 '사순적 일상'을 사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 칠극의 유래

"칠극은 이러합니다. 교만을 이기기 위한 겸손, 질투를 이기기 위한 애덕, 분노를 이기기 위한 인내, 인색을 이기기 위한 희사의 너그러움, 탐식을 이기기 위한 절식, 음란을 이기기 위한 금욕, 게으름을 이기기 위한 근면, 이 모두가 덕을 닦는데 도움을 줌이 명백하고 정확합니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이 1791년 전주에서 심문을 당하며 남긴 확신에 찬 목소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칠극이 갖는 핵심과 의미를 함축적으로 요약한 윤지충의 말대로 칠극은 일곱 가지에 이르는 죄의 원인과 일곱 가지의 덕행을 가리킨다.

「칠극」은 한문으로 적힌 400면의 수양서로서 '칠죄종을 극복해 극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주제로 교만, 질투, 인색, 분노, 탐욕, 음란, 게으름 등을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악으로 여긴다.

「칠극」을 쓴 스페인 출신 디아고 데 판토하 신부(예수회)는 마태오 리치가 1601년부터 10여 년 간 중국 북경에서 전교 및 저술활동을 할 때 그를 보좌하던 사제다. 그를 보좌했기 때문에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와 판토하의 「칠극」은 시기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같은 학파의 특성을 띤 작품이 됐다.

「천주실의」가 중국인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개념을 소개하는데 주력했다면, 「칠극」은 그리스도교적 수양론을 유학자들을 위해 유교적 용어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판토하는 성경과 성인전, 그리스와 로마 철학 및 서양의 여러 대중적 이야기들을 책에 풍부하게 인용하며 사상을 전개해간다. 17세기 중국에서 최초로 만난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접촉을 통해, 인간의 이해와 수양론에 있어 매우 흥미로운 사상의 교류가 일어났던 것이다.

조광 교수(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경향잡지(1993)를 통해 "칠극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전까지 신자들의 윤리생활과 수양의 길을 가르쳐 준 대표적 서적"이라며 "1850년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천주가사에서도 칠극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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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극」은 '칠죄종을 극복해 극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주제의 수양서다.
그림은 교만·질투·인색·분노·탐욕·음란·게으름 등의 칠죄종을 담은 것.
히에로니무스 보쉬 작(1480년 경, 패널 위에 유화, 120×150㎝,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 칠극과 신앙 선조

성인 최경환, 하느님의 종 윤지충, 이순이·유중철 부부, 홍유한 선생 등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실제로 칠극을 통해 단점을 극복하고 모범적 신앙생활을 실천했다. 특히 최경환은 칠극을 통해 본래 가파르고 급하며 혹독한 성격을 이기고 억제해 후에는 도리어 유순한 성품이 됐다.

김수태 교수(충남대 국사학과)는 '최경환 성인의 천주신앙과 순교'라는 논문을 통해 "교만에 대한 경계는 최경환이 신심의 바탕으로 삼은 칠극의 정신이기도 했다"며 "서울을 떠나 산 속 교우촌에 머물 때도 칠극을 통해 수신입공에 전념했다"고 전한다.

이순이?유중철 부부의 신앙생활에도 칠극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칠극 4장, '정결'을 뜻하는 '정극음(貞克淫)'편에서 판토하가 든 사례를 이순이가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결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결혼, 동정서약, 이후 각자 홀로 살며 동정을 유지하자는 내용을 행하며 부부는 기나긴 사순의 시간을 살았다.

하태진 신부(전주교구)는 "이순이·유중철은 한문으로 적힌 칠극을 읽을 수 있는 소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고 믿어지므로 이 책은 그들이 동정부부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지탱해 가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이해된다"고 전했다.





◆ 기고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 연구소장·우곡성지 담당)

"칠극(七克), 인간성 회복 위한 신앙인 지침서"

또다시 사순절이 다가왔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 중의 하나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고, 주님이 가신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겠다고 다짐해보는 시기다. 일그러진 우리들의 본성을 주님께서 주신 원래 그 상태로 회복하고, 삶의 초점을 주님께 맞추어 나가야하는 시기다. 그래서 사순절을 '은혜의 시기'라고 부른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긴급한 사안이 있다면, 곧 '일그러진 인간성 회복'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옛날, 신앙 선조들이 자신의 삶을 수양하기 위한 지침서로 삼았던 「칠극」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 없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종의 '진복선언'과도 같은 책이다.

「칠극」은 17세기,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중국으로 들어온 판토하(1571~1618) 신부가 저술한 심신수양서(心身修養書)다.

이 책은 마태오 리치(1552~1610) 신부가 저술한 「천주실의(天主實義)」와 더불어 신앙 선조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서적이기도 하다.

천주교에 심취했던 소현세자와 사도세자, 온몸으로 천주신앙을 살고 선포했던 농은 홍유한 선생, 홍유한 선생의 제자들이었던 천진암 강학회 회원들, 박해시대 수많은 순교자들이 그러하였다.

그들은 이 책을 읽고 일그러져가는 자신을 추스르며, 주님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마음을 다잡고(求放心), 몸과 마음 등 삶의 안팎을 충실히 닦아나갔다. 또 「칠극」은 동양인의 심성에 맞게 쓰여 있어 책의 내용으로 충분히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할 수 있었다. 그 내용 하나하나가 교회의 정통 가르침이면서 당시 유행하던 '유가적(儒家的) 용어'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칠극」은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 인간 본성을 해치는 일곱 가지 악한 행동의 실마리를 이겨내는(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복음서에 나오는 '진복팔단(마태5,1~12)'이 하느님나라의 대헌장이라면, 「칠극」은 대헌장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 실마리다.

실마리 가운데 첫째는 '교만을 누르는 것', 둘째는 '질투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셋째는 '탐욕을 풀어버리는 것', 넷째는 '분노를 삭이는 것'이다. 다섯째는 '탐을 내어 먹고 마시는 것(무절제)을 막아내는 것', 여섯째는 '음란함을 막아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게으름을 채찍질 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교만, 질투, 탐욕, 분노, 무절제, 음욕, 태만 등은 대체로 인간의 '참된 행복'을 빼앗는 일등공신이다. 빠지기는 쉬워도 벗어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결코 '주님과 하나 되는 삶'을 살지 못한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신앙 선조들은 사순절뿐 아니라 1년 365일 이러한 '일곱 가지 죄의 뿌리(七罪宗)'를 이겨내는데 지극한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사순절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사순시기처럼' 사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칠극」을 교회 발전을 저해하는 구시대적이고 저급한 교리서일 뿐이라고 우습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리 말씀하는 그대가 바로 첫째로 이겨내야 할 '교만'에 빠져있음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참으로 「칠극」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유용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복음적 덕목인 셈이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다들 한 번쯤 "이번 사순절에는 '무엇'을 끊어버리겠다"하고 다짐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칠극」이 소개하는 일곱 가지를 제외시키며 외치는 신앙적 맹세는 '헛것'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 본성을 일그러뜨리는 죄의 뿌리를 이겨내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번 사순시기에는 첫날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신앙 선조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을 살아보시기를 소망해본다. 신앙 선조들이 걸었던 그 길이 사도들이 걸었고, 주님께서 걸으셨던 길이 아니겠는가?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기사원문 보기]
[가톨릭신문  201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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