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의 뫔길]그리운 사랑의 바보, 김수환 추기경

출처 동아일보 :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90131/93939475/1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만난 인물들의 사진으로 만든 대형 모자이크. 동아일보DB

“암 투병을 할 때 바로 옆방에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 입원해 있었다. 추기경이 ‘수녀도 그럼 항암이라는 걸 하나?’라고 묻자 ‘항암만 합니까. 방사선도 하는데’라고 답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추기경이 한마디를 건넸다. ‘그래? 대단하다, 수녀.’”

몇 년 전 출간된 이해인 수녀의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에 실린 내용의 일부다. ‘주님을 위해서 고통을 참아라’라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인간적인 위로가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줬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다음 달 16일이 김 추기경의 선종(善終) 10주기다. 그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선종 직후 명동대성당 현장 취재는 내게도 특별한 경험이자 기억이었다. 그해 명동에서의 하루하루는 초유의 사건에 허둥대면서 돌아오는 ‘끼니’(기사) 챙기기에 바쁜 시기였다. “그게 다 복이다. 언제 이런 큰일을 치러 보겠느냐”는 얘기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편집국의 한 선배는 칼럼에서 “40만 명의 자발적 추모 인파가 모인 ‘명동의 기적’, 그리고 ‘추기경 신드롬’”이라고 썼다. 공식적으로는 서울대교구장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국민장이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5년 뒤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파파 신드롬’이 불었지만 당시는 축제에 가까웠다는 점에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명동의 기적 이후, 햇수가 더해지면서 김 추기경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종종 뜻하지 않게 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접했다. 어떤 사람들에게 김 추기경은 여전히 살아 있다. 

최근 강원 원주시 소초성당에서 만난 김태원 신부와의 대화에서도 그랬다. 사제와 화가의 길을 동시에 살아온 그에게서 추기경과의 일화가 나왔다.
“당시로서는 신부가 전액 장학생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도와준 게 추기경님이다. 파리에 오면 유학생들과 만나 영화나 전시를 본 뒤 맥주도 한잔 사주셨다.”  

그러면서 “서울에 있으면 이런 것도 할 수 없다”며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인과의 대화에서도 김 추기경은 빠지지 않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지낸 월주 스님의 회고록을 연재할 때였다. 김 추기경과 월주 스님은 1971년 청담 스님 열반 때 조문 온 추기경을 처음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만난 뒤 40년 가깝게 알고 지낸 사이였다. 앞서 세상을 뜬 강원용 목사(1917∼2006)와 추기경, 스님이 종교는 달랐지만 외환위기와 노사 갈등 등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민족 화해와 국민 통합을 위해 힘을 모은 삼각형 같은 존재였다는 언급도 있었다. 평소 종단을 대표한다는 격식 때문에 언제나 추기경님, 송월주 스님으로 불렀지만 선종 당시 조문하러 갈 때는 달랐다고 한다. 스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단어는 ‘바보 형님!’이었다.

대북 관련 이야기를 나눌 때도 김 추기경은 등장했다. 지난해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으로 방북했던 원택 스님은 추기경 강연 때 들었다는 말을 빌려 남북 교류 원칙의 하나를 언급했다. 김 추기경은 “제가 돈 내고 북한 간다면 이게 선례가 되지 않겠느냐. 향후 남북 교류가 계속될 것인데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없었다. 이후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적인 모임에서 종교 문제나 이른바 ‘어른의 부재’라는 주제로 말머리가 향하면 김 추기경은 어김없이 소환됐다. 이념과 지역, 계층에 관계없이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푸념 끝 결론이었다.  

한 신부에게 김수환 추기경 정신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대로 바라봐 주는 인간애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강력한 리더십이 아니라 품어주고 안아주고 말을 들어주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leadership)’, 섬김의 리더십이죠. 그런 지도자, 그런 큰 어른이 없으니 추기경이 더 그리워진다”고 했다.

김 추기경 선종 뒤 10년이 됐지만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종교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원로와 지도자들이 일각에서는 열광적으로 지지받지만 다른 쪽에서는 비난받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렀던 ‘바보, 김수환’이 더 그리운 나라가 됐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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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님이 준 로사리오(묵주)

2004년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고속철도가 개통하면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타던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승객이 없어 거의 텅 빈 듯 보이는 비행기 객석 한 자리에 앉아 이륙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앞자리에 앉은 한 사람의 모습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어디서 많이 본 분인데…….”

나는 가벼운 점퍼 차림에 머리가 허연 노신사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알 듯 모를 듯 자꾸만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내 무례한 시선을 눈치 챈 노신사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몹시 겸연쩍어진 나는 엉겁결에 이렇게 외쳤다.

추수한 추기경님과 많이 닮으셨네요!”

허허, 추수환이가 아니고 김수환 추기경과 닮았다는 얘기는 자주 들어요.”

노신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는 그제야 내 실수를 깨닫고는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검은 뿔테 안경너머 노신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어허viit 선생 아니시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노신사는 더욱 반갑게 말했다.

이게 얼마 만이오?" 어서 이리 오시오!”

수행원도 없이 소박하신 모습에 잠시 내 기억이 혼란해진 틈을 타 추기경님이 먼저 내 얼굴을 알아내신 것이다.

, 진짜 김수환 추기경님이 맞네요?”

허허, 김수환이 아니라 viit 수환이오.”

변함없는 위트와 여유가 다시금 그분임을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반가운 만남이었다. 나와 추기경님이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틈에 50여 분의 비행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난 후 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먼 옛날을 떠올리듯 말을 꺼냈다.

기억 저편, 7년 전 그분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1997년 어느 날,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뵈어 온 정달용 대구 가톨릭대 학장님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정 신부님은 나의 학창 시절 복사단 지도신부이기도 하고, 가톨릭 교수협의회 지도신부로 있을 때 윗분의 분부라며 전체 교수들 앞에서 viit에 대한 강의 겸 시연회를 열게 했던 분이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시네.”

추기경님께서요?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시는지요?”

나는 추기경님께서 어떻게 나와 viit에 대해 알게 되셨는지, 그리고 대체 무슨 연유로 나를 보자고 하시는지 궁금한 나머지 약속 날짜를 잡았다.

마침내 김수환 추기경님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20여 년이 넘도록 복사를 서며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과연 그분은 viit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실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기대 반 궁금증 반으로 추기경실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낯익은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 나타났다.

viit 선생이시군요. 어서 들어오세요viit 선생 이야기 참 많이 들었습니다.”

추기경님은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자리를 권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광호라고 합니다. 이렇게 추기경님을 직접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나도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허허, 영광일 것까지야 있겠소. 오히려 바쁘신 분을 오라 가라 하며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 또한 가톨릭 신자로서 이렇게 추기경님을 직접 뵐 기회가 생긴 걸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러시다니 다행이군요. 저도 viit 선생께서 우리 신자라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그래 신앙생활을 하신 지는 오래되셨는지요?”

,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성당에 나갔으니 족히 40년은 넘었을 겁니다.”

종교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일까?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추기경님과 나 사이에는 아주 편안한 대화가 오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추기경님은 권위적이거나 위엄을 내세우는 분이 아니셨다. 편안한 모습으로 말씀을 하시고 혹은 조용히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 퍽 여유로워 보였다. 가톨릭과 신앙생활에 대한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의 주제는 차츰 viit으로 옮겨졌다.

viit 선생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참 많은 분들로부터 별의 별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만.”

추기경님께서 나를 부르신 핵심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추기경님께 직접 여쭈었는데 자세한 말씀을 내게 해주셨다.

지금까지 viit 선생님에 대한 수많은 보고를 직 · 간접적으로 받아왔지만, 결정적으로 부르게 된 이유는 지난 이화여대 111주년 사건때문이었지요. 이후 학교 간부들이 나를 찾아와 그날을 상기하며 빛 선생님이 비를 멎게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이다. 그날 이화여대 111주년 행사에 나도 초대를 받아 현장에 있었습니다. 전역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이화여대가 위치한 신촌 일대에는 비가 오지 않고 내내 맑다가 행사가 끝나자마자 곧 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참 기이한 말이라 생각했지요. 하나님의 축복이란 생각도 들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viit 선생님이 관여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이화여대 간부들은 정 선생님이 펼치는 일이 종교나 과학에서도 불가능한 일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 오후 2시에 정확히 다시 비가 쏟아진다고 예견했던 이야기가 일치하니 우연이라 우길 수도 없고……,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추기경님께서는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여쭈고자 왔습니다.’ 하더이다.”

……

나는 차마 대꾸도 못 한 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추기경님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시다가는 다시 말씀을 이어나갔다.

, 나 역시도 그들이 나를 방문한 뜻을 한참 동안 생각했지요. 가끔 나를 찾아온 그분들의 끝말은 정 선생님을 이대로 두고 보아도 됩니까라는 이야기였어요. 그럴 때마다 정 선생님이 지나온 길을 김영환 몬시뇰로부터 줄곧 들어 왔었지요. 사진도 보았고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마침 제 주변에 임종을 앞둔 두 분이 계시니, 그분들을 한 번 보여드리고 내 앞에서도 viit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 그 viit 현상에 대한 결과를 보고 난 다음 내가 어떤 판단을 해야 될지 생각해 보겠노라고 하곤 되돌려 보냈지요. 그래서 정 선생님을 이리 부르게 된 것이지요.”

추기경님의 솔직한 답변이었다.

그 숱한 보고에 직접 본인 앞에서 확인한 후 그 어떤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추기경님의 고심이 느껴졌다.

, 이화여대 111주년 행사 때의 일은 저도 참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어디까지나 생명 근원이신 viit마음에 의한 것이지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그 일이 있기 전에도 viit 선생께서 주위의 어려운 분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니 분명 천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셨겠지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그저 제게 주어진 능력이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해 널리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제가 viit 선생을 여기까지 오시라고 한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 뭔가가 제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저도 추기경님께서 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 줄곧 궁금했던 참입니다.”

허허, 그러셨군요. 앞의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게 되는군요.”

무슨 부탁이신지요?”

추기경님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계속 말씀하셨다.

아까 말한 것처럼 제 주변에 위중한 환자가 있습니다. 혹시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중 하나가 우리 성소국장 일을 맡아보는 김자문 신부입니다. 아무튼 그분이 요즘 건강이 위중하여 큰 걱정입니다.”

, 그런 일이 있으시군요. 그렇다면 제가 그분을 직접 만나봐야 하겠는데요.”

"그래, 주시겠소?"

추기경님의 부탁을 듣고 나니 처음 추기경실에 들어설 때 가졌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가장 높은 어른으로서의 추기경께서 종교 밖의 힘이라 불릴 수 있는 이 힘을 스스럼없이 구하는 모습이 참 의외로 다가왔다. 과연 추기경님은 이 힘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 걸까? 나는 이전부터 가슴에 담고 있었던 질문을 추기경님께 직접 해보기로 했다.

추기경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 분이 그렇게 딱한 처지에 놓였다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참으로 고맙군요.”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추기경님께서는 과연 이 힘이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비단 추기경님 뿐만 아니라 내가 만난 여러 다른 분들, 즉 다른 종교 지도자라든지, 도인들에게 물어보았던 것이기도 했다. 나는 추기경님이 무어라 대답하실지 자못 궁금해졌다.

허허, 그거야 정 선생께서 더 잘 알고 있지 않으신가요?”

지금까지 이 질문을 다른 분들에게도 많이 해보았습니다만 추기경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꼭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추기경님이라면 진정 바른 답을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라고 뭐 다른 답이 있겠습니까viit 선생이 말씀하시는 viit이란 바로 그분으로부터 오는 성총이겠지요.”

추기경님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웃음을 지으며 다시 찬찬히 말을 이어 나갔다.

글쎄, 저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 힘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정 선생께서 널리 형제자매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계시다니, 우리에게 그 힘을 보내주신 천주님께 감사드리며 소중히 받아드릴 뿐이지요.”

추기경님은 대답을 마친 후 그렇지 않소?’ 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내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종교에 얽매여 마음을 열 줄 모르는 좁은 소견의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른 지혜롭고 포용력 있는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추기경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참 기쁩니다. 사실 그 질문은 다른 누구에게보다 저 자신에게 수없이 던졌던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번 그 질문을 할 때 마다 제 마음속에 울려오는 말은 하나였습니다. 그저 이 무한한 사랑과 행복의 빛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자는 것입니다.”

부디 viit 선생이 가진 힘을 좋은 일에 두루 써주시기 바라오. , 이건 내가 늘 손에 쥐고 기도하던 거요.”

추기경님은 특유의 잔잔한 미소와 함께 작은 로사리오(묵주) 하나를 내밀었다. 추기경님의 고유 문장이 새겨진 십자가와 마더 테레사에게 받으셨다는 타원형의 푸른 성모패가 달려있는 귀한 로사리오였다. 한 눈에 봐도 보통의 로사리오와는 달리 그분께도 큰 의미가 있는 성물임에 분명했다.

앞으로도 저희들이 하지 못하는 좋은 일을 대신해서 많이 해주세요.”

추기경님은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가톨릭의 최고 지위에 계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밖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는 viit을 이처럼 스스럼없이 구하시는 추기경님의 모습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 날 나는 거의 임종을 앞둔 김자문 성소국장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았다. 그 자리에는 김수환 추기경님도 함께였다.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viit 선생이 우리 성소국장을 한 번 봐주시오.”

, 제 힘이 아닌 우주마음을 통해서 오는 viit 에너지를 드려보겠습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김자문 성소국장의 이마에 손을 얹은 채 나직이 외쳤다.

일어나세요!”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김수환 추기경님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다 됐나?”

네가 무슨 2,000년 전의 예수도 아니고 일어나라 한다고 일어날까 하는 표정이셨다. viit을 준다고 하면 무슨 거창한 주문이나 요란항 행동을 취하기라도 하는 줄 알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해서 인사를 하고 대구로 내려왔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 선생이오? 나 어제 만났던 김수환 추기경이오. 지금 10시 비행기를 예약해 놓았으니 그걸 타고 다시 나를 만나러 와줘요.”

느닷없이 김수환 추기경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 내게 말했다.

, ,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또 무슨 영문인가 싶어 대구 공항으로 나가 비행기를 타고는 김포공항에 내렸다.

그러지 정광호라는 피켓을 든 한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정광호요.”

정말 정광호 선생이 맞아요? ?”

그 남자는 몇 번이나 내게 정광호가 맞느냐며 확인을 하였다. 하긴 김수환 추기경님이 부른 사람이라면 뭔가 거창한 놈이 올 줄 알았다가 늘 입고 다니던 차림 그대로 추레한 차림으로 나타나니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 남자는 바로 김수환 추기경님의 운전기사였다. 그는 공항을 떠난 후에도 중간 중간 어디쯤 가고 있노라며 전화 보고를 하였다. 마침내 기사는 나를 명동성당 입구에 내려주었다. 그때였다.

아이고, 정 선생!”

김수환 추기경님이 성모상 앞까지 직접 나와 나를 끌어안으며 반겨주었다.

추기경님,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어제까지만 해도 빈정대던 비서실 사람들도 목례를 하며 예를 갖춰 나를 맞이해주었다.

내가 정 선생을 이렇게 부른 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요. 어제 김자문 성소국장 병실에 다녀온 후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소.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데 누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지 뭐요. 세상에, 그 사람은 바로 어제 정 선생이 일어나라고 한 성소국장이 아니겠소? 내가 깜짝 놀라 , 사람이라? 귀신이라? 하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며 "추기경님 , 저 자문입니다.’ 이러는 게 아니오?”

, 그분이 일어나셨군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 소식을 듣자 나도 진심으로 기뻤다.

성소국장이 그러는데, 어제 정 선생이 "일어나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어두웠던 터널이 밝아지면서 눈을 번쩍 떴다고 합니다. 그 순간 내가 천당에 왔나?’ 하고 방안을 두리번거렸더니 천당이 아니라 자신이 누워있는 병실이었다는구려. 그래, 어제는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수염을 깎고 나를 만나러 왔다는 겁니다.”

추기경님은 여전히 신기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그때 마침 한 신부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성소국장, 이 분을 알겠는가?”

김수환 추기경님이 나를 보며 물었다.

일어나셔서 참 다행입니다.”

내가 웃으며 인사를 하자 성소국장이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 어제 저한테 일어나세요!’ 라고 말씀한 그분 목소리와 똑같군요.”

"바로 그분이시네."

, 저를 살려주신 분이군요! 고맙습니다!”

김자문 성소국장은 위중했던 환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하고 환한 얼굴로 내게 인사를 하였다.

하하, 제가 한 일이 아니라 생명 근원이신 우주마음께서 추기경님의 뜻과 성소국장님의 선한 마음을 보시고 viit을 주신 겁니다.”

나도 덩달아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지 김수환 추기경님이 다시 내게 말했다.

오늘 내가 정 선생을 부른 건 우리 성소국장을 일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것과 지난번에 말한 두 분 중 나머지 한 분을 더 부탁드리려는 것입니다. 지금 모 대학 총장으로 계시는 수녀님인데 지금 위암 말기로 병원에 있습니다viit 선생께서 좀 도와주실 수 있겠는지요?”

, 그러지요.”

나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진심 어린 부탁을 받아들여, 수녀님께도 우주마음이 보내는 viit을 보내드렸다. 그러자 수녀님도 경과가 좋아져 자리에서 일어나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수환 추기경님을 다시 만났을 때였다.

허허viit 선생을 만난 일이 알려지고 난 후 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옵디다. 한번은 젊은 사제들이 내게 왜 viit 선생 같은 이단자를 만나느냐며 항의를 하는 게 아니겠소. 그래서 내가 그분의 힘이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는 알 수 없네! 그저 성경 좀 읽고 사제가 되었다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교만 아니겠는가?’ 하고 크게 꾸짖어 돌려보냈지요. 추기경인 나도 이런 일을 겪는데 그동안 좋은 일을 하면서도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소. 그분(viit)의 뜻에 따라 묵묵히 가십시오. 저도 viit 선생님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추기경님은 빙그레 웃으며 나의 두손을 함께 잡아 주었다.

, 참으로 대단한 분이구나.”

김수환 추기경님은 내게 최고 지위의 종교지도자 이전에 하나의 viit마음, 즉 우주마음의 viit과 이어지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마음을 지닌 분으로 여겨졌다.

2009216,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신 후, 나는 누구보다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줬던 그분과의 아름다웠던 인연을 떠올리며 근원으로부터 오는 사후 영원한 viit을 드렸다.

  출처 : 나도 기적이 필요해 2017417일 초판발행

201753일 초판 3P. 35-47
 

김수환(金壽煥, 1922년 7월 2일 ~ 2009년 2월 16일)은 대한민국의 천주교 성직자이자 사회운동가이다.

한국인 최초로 가톨릭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본관은 광산. 세례명은 스테파노이며 아호는 옹기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권 당시 군사 독재정권 퇴진 운동과, 시민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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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善終(선종) 하신 김수환 추기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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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12분께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ㆍ서거를 뜻하는 천주교 용어)했다.

향년 87세. 1922년 5월 대구에서 출생한 고인은 1951년 사제품을 받았고 1966년 초대 마산교구장을 거쳐

1968년 대주교로 승품한 뒤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인 최초 추기경으로 서임된 고인은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1998년 정년(75세)을 넘기면서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사진은 김수환 천주교 추기경의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 소개된

일본국 학병 시절의 김수환 추기경(오른쪽).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한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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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12분께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했다. 향년 87세.
사진은 지난 1989년 10월 서울 세계성체대회 장엄미사를 마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김수환 추기경이
방탄차에 올라 신자들의 환호속에 여의도 광장을 지나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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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철 기자]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수환 추기경의 건강 상태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성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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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순 주교 만나는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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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초 추기경 서임 축하쇄도

(서울=연합뉴스) 1969년 5월 로마에서 추기경 서임식을 마치고 귀국한
김수환 추기경이 축하미사에서 노기남 대주교(왼쪽),
서정길 대주교와 함께 입장하는 모습. 김수환 추기경 회고록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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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한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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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대 설득하는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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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상업학교 재학 시절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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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시절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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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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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의 현대사 고비마다 ‘항쟁의 횃불’ <돌아본 민주화 여정>

김수환 추기경은 70-80년대 서슬퍼런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화를 향한 촛불을 꺼내들었다.
그는 당국의 강압 속에 언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중요한 시국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부에 대한 권고와 일침을 계속해왔다.
그는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한 나라 종교의 수장을 넘어서 민주화의 횃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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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言)
    말을 많이하면 필요없는 말이 나온다
    양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번 생각하고 열라
2. 책(讀書)
    수입의 1%를 책사는데 투자하라
    옷이 헤어지면 입을수 없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있다
3. 노점상 ( 路店商)
    노점상에서 물건살때 깎지말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
4. 웃음 (笑 )
   웃는 연습을 생활화 하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며 치료약이며, 노인을 젊게하고 젊은이를 동자(童子)로 만든다
5. TV (바보상자)
   텔레비젼과 많은 시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TV에 취하면 모든게 마비된 바보가 된다
6. 성냄 (禍 )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게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7. 기도 ( 祈禱 )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년 암흑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는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하며 만생을 유익하게 하는 묘약이다
8. 이웃 (隣 )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 한다
9. 사랑 (慈愛 )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년 걸렸다
10.멈춤
    가끔은 칠흙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
    마음의 눈으로, 마음의 가슴으로, 주인공이 되어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나?
    조급함이 사라지고 삶에 대한 여유로움이 생기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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