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가 보려고 합니다.
솔뫼에서 (1821년 8월21일)
태어난 성인께서 순교로 하느님께 돌아가신 (1846년9월 16일)
곳은 서울 새남터순교성지입니다.
성인께서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들어와 붙잡힐 때까지 활동한 기간은 반년 남짓합니다.
짧았던 만큼 성인의 자취가 남은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의
솔뫼 성지
김대건 신부님께서 태어난 곳은 충남 솔뫼입니다.
솔뫼는 소나무 숲이 청청하다는 뜻을 지닌 송산(松山)의 우리말입니다.
김대건 성인께서 태어나신 생가 터일 뿐 아니라 증조부 김진후(비오, 1814년 순교)를
시작으로 4대에 걸쳐 순교자 11위를 낸 성지입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고 했던 솔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방문하셨습니다.
성지는 2004년에 복원한 성인의 생가와 함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기념관,
소나무 그늘 아래 서 있는
김대건 신부님 동상 및 기념탑 등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기념관은 성당을 비롯해
성인의 생애와 사목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김대건관,
대전교구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내포 교회관,
기증 유품실, 소영상관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골배마실성지
성인의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과 어머니 고 우르슬라께서
천주교인 이라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때 집안이 몰락하고
박해를 피해 골배마실
깊은 산골로 옮겨와서 살며
신앙생활을 한곳은
산하나를 넘어가면 있는
은이 공소였습니다.
성인께서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어린시절을 보낸곳이며
16세의 어린 나이 1836년 모방신부님에 의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고 3년 후
아버지 제준 이냐시오 성인께서는
1839년 기해박해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셨습니다.
1845년8월17일 사제로 서품되고
귀국 후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시고
유리 걸식을 하시던
어머니 고 우르슬라님을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체포되기 직전 공식적으로 최후의 미사를 드렸던 곳입니다.
이 천주당 건물은 중국 상해에 있는 사제서품을 받은 금가항 성당을 복원 그 성전을 허물때 쓸 수 있는 자재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제주도 현경면에 있는
용수리 성지
용수리 포구는 성인의 조선 입국과 관련된 성지입니다.
제주교구는 이를 기념해 용수리 해안 차귀도가 보이는 곳에
김대건 신부님 제주표착
기념관과 기념 성당을 세웠습니다.
1845년 8월31일 중국을 출발하여
귀국하던중 사흘만에 큰 풍랑을 만나
표류하던 일행이 도착한 곳이 바로 제주도 용수리 포구입니다.
1845년 9월28일 제주에 표착
성인께서는 함께 온 일행들과 고국에서의 첫미사를
용수리 해안에서 봉헌하시고,
성인 일행이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복원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며칠간 머물면서 배(라파엘호)를 수리하고 다시 출발
라파엘호는 성인께서 그 전해 부제품을 받고 일시 귀국하셨을 때
구입해서 타고 간 배라고 합니다.
전북 익산에 있는 나바위 성지
1845년10월 12일밤 도착.
제주 용수리에서 출발하여
익산 망성면 황산포 나바위 언저리에 도착한 축복의 땅
나바위는 성인께서 1845년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님과 함께
제주 용수에서
서해를 통해 귀국하면서 첫발을 디딘 곳입니다.
이곳에는 성인 일행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을 기념해 세운
나바위성당이 있습니다.
1845년 10월에 도착 해서 은이공소를 중심으로 사목활동을 하시다,
1846년 6월 5일
선교사 입국을 위한 지도를
중국 배에게 전해 주려다 연평도 근처에서 포졸에게 체포됨.
새남터순교성지.
(사제들의 순교지. 조선시대 중한 죄인 국사범들을 처형한 곳)
1846년 9월16일
성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군문효수형 으로 순교하신곳.
전통 한옥 양식으로 세워진 새남터성당
김대건 신부님 등 성직자 14분의 흉상과 부조
김대건 성인 유해를 모신 조배실등
사제들의 순교지 새남터 순교성지
그 시절 한강 모래사장이 처형장 이었기에 그 때의 모래를...
경기도 안성 산골짜기에 있는 미리내는 성인이 묻힌 곳입니다.
당시 대역죄로 처형당한
김 신부님의 유해를 거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성인이 순교한 지 40일이 지난 후 목숨을 걸고 성인 유해를
거둔 사람이,
바로 이민식 빈첸시오입니다.
이민식은 자신의 고향인 미리내에 성인의 유해를 묻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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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는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신자들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이
달빛 아래 냇물과 어우러져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당 앞에 모신 성인의 묘소
어머니 고 우르슬라님의 묘소
성인에게 사제서품을 하신
조선의 3대 페레올 주교님의 묘소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소가 함께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가톨릭 대학교 성신교정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오늘도 기도하고 계신답니다.
성당내부
제단 오른쪽 감실 아래에 모셔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
성인의 두개골을 모신 유해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주교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머지않아 천당에서 영원하신 성부 대전에서 서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를 대신하여 모든 공경하올 신부님들께도 인사드려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한 저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로 하여금 모든 혹독한 형벌을 끝까지 용감하게
이겨내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환난을 굽어보소서.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여,
누가 감당할 수 있으리이까."
■ 최양업 신부님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편지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토마스여, 잘 있게.
이후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그리고 내 어머니 우르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기를 그대에게 부탁하네.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무익하고 부당한 종,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힌
조선 선교지의 교황 파견 선교사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사제가 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서영숙 아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