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0 14:21

[스크렙] 기도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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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의 이해 / 기도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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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시다 (MULTSCHER, Hans 작, (1437))
그러고 나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루카 복음서 22,41)


 

기도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는 내용에 따라서, 또 표현 형태에 따라서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기도 내용 또는 기도 지향을 놓고 볼 때
청원기도, 감사기도, 찬미와 흠숭, 통회기도 등으로 나눌 수 있고,

 

기도를 바치는 형식에 따라서는
소리기도(구송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로 구분하고 있다.

 

청원기도

인간은 자신이 강하다고 여기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게 마련이므로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마땅한 일이다.

 

청원기도를 하는 것은
첫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서 한낱 피조물이라는 한계를 고백하는 것이다.


둘째, 이전까지는 하느님과 등을 대고 지냈을지 몰라도 청원기도를 하는 순간

이제는 하느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다.

 

따라서 청원기도에는 부족함을 인정하고(겸손)
하느님을 향해 다시 돌아서는(참회 또는 회개) 자세가 내포되어 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용서를 청함이 청원의 첫 단계"(2631항)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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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쎄마니에서의 기도 (엘 그레코 작, (1588),톨레도 미술관)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루카 22,39-42)


청원기도 때는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다 청원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점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청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를 위해 청원하는 전구(轉求)도 청원기도에 포함된다.
전구는 나눔 행위이며 사랑의 실천으로 전구에는 한계가 없다.
원수들을 위해서도 전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구해야 한다.

 

감사기도
감사기도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바치는 기도로,
청을 들어주심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의 대상이다.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당부하였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8).
그러므로 청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모두 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찬미와 흠숭 (찬미기도)
찬미와 흠숭은 인간이 하느님을 알아 뵙고 하느님께 맞갖은 예를 드리는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선의 원천이시고, 축복의 근원이시다.

인간에게 무상의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을 만날 때 찬미로 하느님께 응답해야 한다.


찬미와 찬양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알아 모실 때에 터져 나오는 기도이며,

흠숭은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달아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 꿇어 엎드리는 행위이다.

 

통회기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러한 선물들을 잘못 사용하고, 부주의하고,
우리의 약함과 죄스러움, 불성실 등을 인정하는 것이 통회의 기도이다.

 

통회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수고, 낮추는 마음이며
이는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인간의 약함과 죄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통회를 충분히 하게 되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용서를 청하기 전에 뉘우침과 비탄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회기도는 죄에 대한 통회를 나타내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죄를 지은데 대해 가슴 아파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드리는 기도로서

고백성사, 저녁기도 등의 일부를 이루며, 자신의 죄를 반성할 때 일반적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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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렘브란트(Rembrandt)작, (1669),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쥐 미술관

 

기도에 있어 이와 같은 요소는 서로 겹치는 것이 보통이며,
하느님께 향한 모든 참된 기도는 자연스럽게 흠숭, 감사, 통회가 포함되어 있다.


소리기도 (구송기도)

말 그대로 소리를 내어 기도문을 정성껏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염경(念經)기도라고도 하며, 주님의 기도, 삼종기도, 성무일도 등
정해진 기도문을 혼자 또는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이다.

 

소리기도에서 '소리'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하느님께 건네는 '말'이다.
말은 인격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에 소리기도를 바칠 때에는 정성을 다해 온 마음으로 바쳐야 한다.

 

묵상기도
묵상이라는 말은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몰두시켜 하느님의 현존 속에,
하느님과 관련된 일에 대하여 생각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묵상은 신앙의 신비나 그 진리, 예수님이나 성인들의 생애, 성서나 교회의 가르침 등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신앙을 보다 깊이 통찰하고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알게 한다.

 

그러나 이는 관상(觀想)과는 구별되며,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 수련 묵상법은 그 좋은 예이다.

그래서 묵상기도는 생각만으로 드리는 마음의 기도이다.


묵도(默禱)란 '말없이 기도하다, 묵상하다, 명상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소리기도(염경 기도, 통경 기도)와 구분한 마음 기도(묵상, 명상)이다.


통경기도란 여럿이 함께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며,
염경기도 역시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다.

 

이렇게 보면 눈을 감음(默念) 역시 마음 기도 혹은 그 준비라고 말할 수 있다.
눈을 감음은 생각을 모아 일체의 잡념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동작이다.

 

일반 종교 의식이나 국민 의례에서도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음으로써,
번다한 세상과 인연을 끊고 고인(故人)이나 심오한 진리에 마음을 기울인다.

 

가톨릭신자는 영성체, 복음 낭독, 강론 후 묵상 때 눈을 감고

우리의 마음을 드높은 세계로 올린다.

 

언제 어디서고 조용히 눈을 감고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마음의 눈을 돌린다면,
깊은 신앙으로 인도될 것이다.

 

그리고 묵상기도는 "사고력, 상상력, 감정, 의욕 등을 동원하는 탐색적인 기도"이고
그 목적은 "삶의 현실에 비추어 고찰한 주제를 신앙을 통해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있다(2723항).

 

묵상을 할 때는 보통 묵상자료를 이용하며,

성경을 비롯해서 전례기도문, 신심서적이나 성화상 등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거룩한 독서' 기도는 묵상기도의 대표적 방법이다.

 

관상기도
관상(觀想)이란 보통 하느님을 직관적(直觀的)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느님과의 친교가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일치로 발전하여,
하느님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언어와 개념과 이미지, 매개 수단 등이 불필요하다.

결국 하느님의 영(靈)이 사람 안에 직접 내재하여 활동하시기에,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은 모두 침묵 상태에 이르고,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랑하게 됨을 말하는데,
이는 영성 생활의 최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관상에는 개인의 노력으로 직관의 능력에 도달하는 능동적(修得的) 관상과,
하느님의 은혜로 신적 영역을 체험하고 신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는 수동적(注賦的) 관상이 있다.

 

전자는 불교의 선(禪)에 해당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번뇌를 끊고, 무아 정적의 경지에 몰입하는 경우다.


후자는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느님의 본성을 체험하는 경우이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관상이란 후자의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관상은 완덕에 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지 완덕 자체는 아니다.
다만 하느님께 집중함으로써 자신을 더욱 겸손하고 관대하게 하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관상기도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자주 단둘이 지냄으로써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달리 표현하면 관상기도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상기도는 침묵 중에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바라봄의 기도이며,
우리 내면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들음의 기도이며,
자신을 완전히 비워 하느님과 일치하는 비움의 기도, 일치의 기도이기도 하다.

관상기도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은총이다.

 

향심기도

향심기도는 '하느님을 만나려면 자신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과 그리휘스(Bede Grifiths)에게서 시작된 말이다.

 

나의 참 자아 안에, 곧 나의 가장 중심(center)에 계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기도'라는 뜻이다.

 

또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고 내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내가 하느님께 동의해 드리는 기도'이며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를 대신해서 기도하시도록 놓아드리는 기도'이다.

 

향심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을 하느님께 보여드리는 것인데,
우리가 간절한 마음을 하느님께 보여드릴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끌어당겨 주신다.

 

그러한 의미에서 향심기도는 주의를 집중(attention)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 마음과 영혼을 하느님께 맡기려고 지향(intention)하는 기도이며,
어떠한 행동(doing)을 하는 기도이기보다 그분 곁에 머물러 함께 존재(being)하려는 기도이다.

 

향심기도는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 왔던 그리스도인 관상기도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맥락을 이어받고 있다.

 

그리고 교부들의 가르침과 「무지의 구름」,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저서들에 바탕을 두고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의 언어로 구체적인 수련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인간의 발달과 그에 따른 영성생활에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는
심리학과 사회학적 통찰을 철저하게 고려하여 발전되어 왔다.

신학적, 인류학적, 정신의학적 이론과 접목시켜 이론적 배경을 발전시킨 것이다.

 

향심기도는

'교회는 신학과 그리스도교 교리를 현대의 용어와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옛 전통을 새로운 시대 감각에 맞게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발전시킨 관상기도의 방법이다.

 

그리스도교 관상기도의 전통과 향심기도
교회는 초창기부터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관상기도를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의 목표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문예부흥사조가 형성된 이후에 살아있는 전통으로서
이 유산이 급격하게 유실되기 시작하였다.

 

15세기 말경부터 기도법이 복잡해지고 체계화되면서
논리적 묵상, 정감적 기도, 하느님을 향한 몰입을 지향하는 관상기도로 분화되면서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줄로 아는 풍조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16세기 초에 이르러 교회 전통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신앙생활의 자유로운 실천을 용인하지 않음으로써
관상기도 생활에 관한 기풍이 결정적으로 위축되었다.


영성의 길이 봉쇄 수도회 남녀 수도자들이나

관심을 갖고 걸어가는 외롭고 험난한 수련의 여정인 줄로만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관상기도에 대해서나 영성에 대해서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 않다 보니
자연히 평신도들의 신앙생활은 영성이나 관상기도와는 무관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루어져 왔다.

 

이렇게 우리 교회가 영성적인 빈곤의 시대를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영성의 위기는 곧 교회의 위기로 나타나게 되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불교의 선(禪)이나 인도의 요가 등 동양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들이 크게 늘어났고, 신흥 종교나 유사영성 운동이 대두되면서
신자들을 교회에서 빼내가는 구실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교회 안에 새로운 신학적, 영성적 쇄신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하였고,
그 영향으로 영성적인 자각이 일어나게 되었다.

 

토머스 키팅 신부는

교회가 영적 목마름을 풀어줄 방법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데에 결정적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고,

그 대안으로서 관상기도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가르침과 더불어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의 문맥 안에서 '향심기도(Centering Prayer)'의 방법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향심기도의 방법은
1970년대 후반부터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를 대상으로 한 피정을 통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 후 미국 전 지역에서 향심기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여러 지역에서 향심기도 모임이 생겨나게 되었다.

 

1984년에 국제관상지원단이 창립되었고,
1986년에는 미국의 뉴저지와 콜로라도 스노매스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국제관상지원단 사무실을 두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2002년 6월

토머스 키팅 신부의 내한 강연을 기점으로 한국관상지원단 사무국이 개설되었는데,

이곳이 향심기도 방법을 소개하고 지원하는 영적 연락망의 역할을 하고 있다.

 

향심기도의 신학적 기초
교회는 전통적으로 기도를 '하느님과의 만남, 대화'로 정의해 왔다.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토머스 키팅 신부는 '기도는 관계'라고 정의하면서,

'향심기도는 거룩한 독서로 생겨난 하느님과의 일치를 갈망하는 그리움을 가지고 관상으로 들어가려 할 때

 관상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곧 향심기도는 거룩한 독서를 할 때 하느님과의 일치,
친밀함으로 나아가는 데 일어나는 장애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단순히 방법일 뿐만 아니라 관상기도를 시작하는 첫 계단이므로
그 자체로 관상기도이기도 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친밀한 일치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고
또 우리를 그러한 사랑 깊은 관계로 초대하신다.

 

향심기도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마르 12,30)는

하느님의 원의에 따라 그분과 맺는 친밀한 일치의 관계를 지향하며
'하느님 안에 쉼'이라는 관상에 이르는 길로 이끌어준다.

 

향심기도의 방법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심에 동의한다는 지향의 상징으로서
거룩한 단어를 선택한다.

 

편안히 앉아 눈을 감고 잠시 동안 자리를 잡은 다음,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심과 활동하심에 동의를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거룩한 단어를 부드럽게 떠올린다.

 

기도 중에 당신의 사고(분심과 잡념)가 개입하였으면
아주 부드럽게 거룩한 단어로 돌아간다.

기도 시간이 끝날 때, 눈을 감은 채 2분 정도 침묵 속에 머물러 있는다.

 

향심기도에서의 의지와 지향
향심기도는 지향(intention)의 훈련이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의지, 곧 하느님과 함께 머물 것에 대한 우리의 선택 기능을 계발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더 깊이 응답하고 그 사랑 안에 머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향심기도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지향을 습관이 되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인 '자아 포기'의 영성적 태도와 깊이를 체화할 수 있게 해준다.

 

거룩한 단어는 생각들을 밀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예" 를 말하고자 하는 우리의 원지향을 재확인시켜 준다.

 

거룩한 단어는 내 안에 계신 하느님께 자신을 열어드린다는 지향을 나타내며,
의식 속에 지나가는 어떠한 생각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되돌아가야 하는 거점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단지 우리의 지향을 나타내려고 사용하는 것뿐이다.

향심기도 중에 할 단 한 가지 행동은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에
동의하고자 하는 우리의 지향을 유지하는 것이다.

 

향심기도는 집중(attention)하는 기도가 아니라 지향(intention)하는 기도이다.
곧 향심기도 중에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노력은 '노력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기도 중에 떠오르는 여러 사고들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는 능력이 자라면
그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로움 가운데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룰 수 있게 된다.


묵주기도 (로사리오 기도)

로사리오란 말은 장미 꽃다발(Rosario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으며,
로사리오 기도는 서방 가톨릭 교회 전례 밖의 기도 중 가장 널리 보급되었고,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살아가게 하며,
그리스도께서 가르치고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게 하여

우리 자신을 성화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바치는 것으로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하느님께 청하여 주신다.

 

로사리오의 역사

옛날 Niniveh(니느웨, 니네베) 시대부터 기원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당시의 신자들은 같은 내용의 기도를 반복하며,
기도의 횟수를 세기 위해 구슬, 염주알, 마른씨, 조약돌 등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불교나 그 외의 다른 종교에서도 행하였고, 어떤 종교에서는
구멍이 뚫린 나무판을 사용하여 기도의 횟수를 세었다는 기록도 볼 수 있다.

 

로사리오의 역사는

도미니꼬회 수도원 규칙으로  시편 150 편을 매일 외우는데서 비롯되었다.

 

수도자들은 시편 150편을 항상 기도하며 묵상하였는데
평신도들도 이 기도를 따르고 싶어 하였지만 너무 길고 어려워 '주님의 기도'만 150번 염송하였다.

 

그래서 묵주(구슬)기도를 주님의 기도라 불렀으며,
지금도 '주님의 기도'라 부르는 나라가 있는데,
12세기 중엽 성모송이 일반화되면서 로사리오 기도로 활용되었고,
15세기에 이르러 이 기도는 예수님의 구세사를 성모님과 관련지어 묵상하는 기도로 바뀌었다.

 

16, 17 세기에 성모송을 많이 바치게 될 즈음 150번의 묵상이 15번으로 줄어들었고,
15번의 짧은 묵상으로 오늘날과 같은 로사리오 기도의 현의(玄義: 간직된 깊은 뜻)가 이루어졌다.

 

오늘과 같은 로사리오 기도의 틀을 이룬 것은 도미니칸 사도회 수도원이었다.
이 수도원의 도미니코 성인은 로사리오 기도의 기틀을 이루신 많은 공적을 남기신 분으로

성모송을 150번씩 외우는 방식을 생전에 이루어 놓았다.

 

이후 약100년 간 계속되었으며, 돌아가신 후에도 200년 동안이나 성인이 이루어 놓으신
15단 현의 묵상기도 방법이 활용되어 왔다.

 

1220년과 1450년에 이곳 수사님들이 남긴 기록에 로사리오는 성 도미니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고,

또 다른 기록에는 성모 마리아가 도미니코 성인에게 발현하시어 로사리오를 주셨다고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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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오의 구성
사도신경
성교회의 중요한 신앙 조목이 들어있는 믿음의 교리로서,
이 기도문은 로사리오 기도를 시작할 때 성교회의 교리를 겸손한 마음으로 믿기 위해

처음에 외우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문으로, 
이 기도문에는 오묘한 교리가 포함되어,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지어낼 수 없는
완전 무결한 기도문이기에 로사리오 기도 때에도 이 기도문을 외운다.

 

성모송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 앞에 나타나 "

은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여…"라는 최상의 인사말씀으로, 이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며,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는

성모님께 우리가 간구하는 신심의 말씀이다.

 

영광송
하느님 말씀을 찬미하는 기도문이다.

 

성모발현과 묵주의 기도 (로사리오)
묵주기도는 성모님께서 1850년 이후
직접 여러 곳에서 발현하시어 간절히 원하셨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3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발현하셨고,
1846년 La Salette에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머리와 가슴, 발에 오색 찬란한 화관을 두르고 계셨는데,
이 꽃들은 우리가 매일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장미였다.

 

1858년 루르드(Lourdes)에 발현하실 때는 묵주를 가지고 오셔서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벨라뎃다(베르다네트)에게 가르쳐 주셨다.

 

1871년 Pontmain에 발현하시어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 간청해 주시는 당신의 힘이
얼마나 큰 지를 가르쳐 주셨다.

 

1917년 파티마(Fatima)에 6번이나 발현하셨으며,
매일 묵주기도 15 단을 바칠 것을 간곡히 부탁(소련의 회개를 위하여)하시고
6번째에는 당신을 "매괴의 모후"라고 선언하셨다.


복음의 요약
묵주기도는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환희의 신비)을 시작으로
예수님께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말씀과 행동으로 선포하신 공생활(빛의 신비)과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희생(고통의 신비),
그리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승리(영광의 신비)까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묵상할 수 있기 때문에 '복음의 요약'이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2002년 10월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라는 교서를 통해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를 추가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기도
묵주기도는 성격상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께 바치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기도이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는 묵주기도가 바로 관상기도임을 뜻한다.

관상의 차원이 없으면 묵주기도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묵주기도의 성격을
다섯 가지로 제시하였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기억하기
성모님께 그리스도를 배우기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닮기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께 기도하기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기가 그것이다.

 

곧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놀라운 구원의 신비를
기억하며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이다.

 

또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노력하며,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그리스도께 우리의 간절한 청을 드리는 것이고
나아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가 묵주기도를 바치는 그 행위를 통해서

또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다.

 

평화의 기도이자 가정의 기도
묵주기도는 평화의 기도이다.

평화의 임금이시며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전쟁과 분쟁, 각종 폭력으로 평화가 위협당하는 이 시대에 묵주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참 평화를 구하고 평화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묵주기도는 나아가 가정의 기도이자 가정을 위한 기도이다.
가족이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는 가운데 가정의 일치와 화합을 되새기며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을 본받아 성가정을 가꾸어갈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녀들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날마다 가정기도 시간을 갖도록 하라고 권고하셨다.

 

묵주기도 순서
① 성호경과 (이어서 십자가에 입맞춤을 할 수 있음) 사도신경
② 주님의 기도, 성모송 3번, 영광송
③ 구원을 비는 기도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④ "…신비 1단"
     예 : '빛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심을 묵상합시다'
    「가톨릭기도서」 17~18쪽)을 바치고 잠시 침묵 중 묵상
⑤ 주님의 기도, 성모송 10번, 영광송, 구원을 비는 기도
⑥ "…의 신비 2단", 주님의 기도, 성모송 10번, 영광송, 구원을 비는 기도,
⑦ "…의 신비 3단", 주님의 기도, 성모송 10번, 영광송, 구원을 비는 기도,
⑧ "…의 신비 4단", 주님의 기도, 성모송 10번, 영광송, 구원을 비는 기도,
⑨ "…의 신비 5단", 주님의 기도, 성모송 10번, 영광송, 구원을 비는 기도,
⑩ 성모찬송(「가톨릭기도서」 36~37쪽), 성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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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도달하고자 형성해 온
풍요로운 영성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은 단적으로 말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으로서
하느님 중심적이며 역사 안에서 강생을 통하여 하느님의 모습을 인간에게 제시하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의 신비 안에 참여함으로써
성삼의 삶으로 인도되어 꽃피우고 열매 맺는 삶으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라고 말씀하신

주 예수님의 산상성훈의 가르침을 따라 완덕(完德)에 이르는 삶을 사는 데 있다.

 

그것은 하느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주 예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을 인생의 길잡이로 삼아 살아가는 삶이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영성생활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다양한 삶으로 드러난다.
이는 헤아릴 수 없는 풍요로운 그리스도의 보화의 결과로서(에페 3,8)


일찌기 성 토마스 아뀌나스가 진술한 것처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선물은
다양하여 교회의 미(美)와 완덕(完德)은 여러 가지로 드러난다.


사도 바오로도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 있는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며(로마 12,3-8)
성령께서 베푸시는 다양한 선물들을 초대 교회의 활발한 체험을 근거로 인정하고 있다(1코린 12장).

 

이와 같이 은총의 작용은 개개인 안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므로 그런 삶은 역사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다양하게 개개인 안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므로 그런 삶은 역사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다양하게 성장 발전되어 왔다.


민족과 언어에 따라서 그리고 시대의 변천 과정에서 교회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각각 독특하고도 고유하게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영성을 꽃피워 풍성한 열매를 맺었으니
이는 오로지 성령께서 베푸신 은총의 풍성한 결과이다.

 

복음 삼덕을 바탕으로 교회로부터 공인된 수도 공동체들도
그 생활 양식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관상(觀想)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회들이 있는가 하면
활동을 중시하여 각종 사도직에 종사하는 수도회들도 많다.

 

활동 중에서도 주로 교육 사업에 종사하는 수도회들이 있는가 하면
병원이나 양로원, 고아원과 같은 복지시설 등지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삶을

수도 소명으로 하는 수도회들도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평복 수도자들과 가정과 직장을 가지고도
깊이 있는 영성생활을 하는 평신도들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다양한 생활 신분에 따라 각각 독특하고 고유한 영성이 있으며
각 영성은 하느님 안에서 우열의 차이가 없이 그 자체로 고귀하다.

 

개개인의 삶이 하느님 안에서 고귀한 것처럼 다양한 영성 또한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볼 수 있어 이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교회 안에서 발전되어온 다양성 안의 일치(unitas in diversitate)는
성령 안에서 체험하는 개인의 영성적 특성을 인정하면서도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룬다는 영성으로서 보편 교회의 특성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영성은 우열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하느님은 각자의 존재 양식(modus essendi)에 따라 다양한 선물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들은 서로 격려하고 지도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건설하도록 힘쓰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지 자기와 다른 영성생활이나 생활 양식을
비판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다.

 

교회 안에 큰 영성 학파 내지 영성의 흐름을 주도하는 단체들은 대부분 수도회들이다.
수도회들은 두 개의 큰 방향을 띠고 있으며, 관상 수도회와 활동 수도회가 그것이다.

 

서양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베네딕도 수도회는 원래 봉쇄 수도회였으나
시대의 요구에 따라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그 외 갈멜회, 프란치스꼬회, 도미니꼬회, 예수회 등 큰 수도회들이
각각 고유한 수도회 영성을 확립시켜 왔다.

 

근대 이후 교회의 쇄신과 선교의 목적으로 설립된 수많은 남녀 활동 수도회는
시대의 징표와 요구를 깨달은 열성적인 사람들의 영성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
성 돈 보스꼬의 영성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이 끝난 후 일어난 신심운동들,
특히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열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운동(.M.B.W.), 포꼴라레( Focolare),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꾸르실료(Cursillo), 부부 주말 피정(Marriage Encounter)
등은 훌륭한 영성에 바탕을 둔 신심 운동들이다.

 

작은 형제회의 영성은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극을 주며 관상 수도회는 활동을
중시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 중심의 삶을 일깨워 준다.

 

수도회 외에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또는 그리스도교 전통이 깊은 나라들 안에서는
다소 특이한 영성이 있어 왔다.

 

중세기 교회의 영성, 근대의 영성, 현대의 영성이 있어 왔으며
프랑스 교회의 영성, 라인강을 중심으로 하는 독일 신비가들의 영성
그리고 동방 교회 영성이란 용어들이 등장할 정도로 독특한 영성이 발생하여
교회의 삶을 풍부하게 해 온 것이다.

 

가톨릭기도서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도서로
1968년 주교회의 전국전례위원회의 기도서 개편(案)안에 따라
가톨릭 공용어 심의위원회에서 편찬하여 주교회의 인준을 거쳐
1972년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초간하였다.

 

내용은 전체 6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편 '일상기도' 편에서는 주요 기도문들과 아침기도, 저녁기도 등을,
제2편 '특수기도' 편에서는 각 성월기도, 호칭기도와 십자가의 길, 연도 등을,
제3편 '여러 기도 기도' 편에서는 46개의 갖가지 기도문들을,
제4편 '공소예절' 편에서는 공소예절 전반을,
제5편 '미사 통상문'에서는 미사 통상문과 미사의 4가지 양식과 감사송을,
제6편 '주일미사 및 축일미사' 편에서는 전례력에 따른 연중 주일과 축일의 미사 중
신자들의 합송부분을 수록하고 있다.

 

화살기도
화살기도라는 것이 있다.

'화살이 날아가는 짧은 순간을 이용해 간략하게 바치는 기도를 말하는데,


'주님 감사합니다'
'저 분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같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상황에 맞게 짧은 기도를 바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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