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본당

부산본당의 제2대 주임신부인 우도신부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894년 2월에 동학운동이 시작되어 1895년에는 급기야 청일전쟁으로 확대되었고, 이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부산본당에는 1897년 라우렌시오 신부가 새로 부임하여 우도 신부의 짐이 덜게 되었다.
1898년에는 우도 신부의 후임으로 타케 신부가 부임하였다가 진주본당을 맡으면서, 후임으로
드망즈 신부가 부산본당에 부임하였고, 1900년에는 5대 본당 신부로 로 신부가 부임했다.
1902년 로 신부의 선종으로 르 쟝드르 신부가 부임하여 1909년까지 사목했다.
부산본당의 총 교우수는 1887년의 825명에서 1891년에는 1000명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1894년에는 1502명으로 최고치에 달했다가 이후 감소 추세로 돌아서서 1897년에는 1181명으로 줄었고, 1903~09년 사이의 부산본당 관할의 교우 수는 1100~1200명에 머물렀다.
1893년 당시에 비하여 진주본당과 청도가 분리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동학운동을 거치며 교세의 확장은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래지역은 대체로 교우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도 1888 1889 1890 1891 1892 1893 1894 1895 1896 1897
교우수 45 33 15 40 66 62 74 95 55 116(+43)
감소 감소 증가 증가 감소 증가 증가 감소 증가

1903년의 보고서에서 동래 관할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

부산의 초량공소는 훌륭한 교우 집단으로 어린이와 임종 대세자수는 많으나, 성인 영세자 중에서 실제로 부산에 소속된 사람은 단 한 명 뿐으로, 개종자를 거의 못 낸 것이나 다름없다.

밤대는 공소라기보다 훌륭한 세 개의 교우 집단 즉 밤대, 수영, 동래부의 결합체이다.
지도적 인물이 없고 나이가 든 여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절영도의 공소는 옛 상황을 그럭저럭 유지해가고 있다.

  1. 22년도 사목협의회 임원 임명장 수여식(22.01.02)

  2. 조정숙 그라시아 수녀님 환영식(22.01.02)

  3. 1월 성수예식(22.01.02)

  4. 천주의성모마리아대축일(22.01.01)

  5. 성탄대축일 어린이행사(21.12.25)

  6. 성탄대축일 낮미사(21.12.25)

  7. 성탄성야미사 (21.12.24)

  8. 교리교사 근속시상(21.11.28)

  9. 예비신자 입교환영식(21.11.28)

  10. 동래성당 HISTORY (4)

  11. 동래성당 HISTORY (3)

  12. 동래성당 HISTORY (2)

  13. 동래성당 HISTORY (1)

  14. 동래5

  15. 동래4

  16. 동래3

  17. 동래2

  18. 동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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