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1865년 체포되어 순교한 교우들은 모두 11명으로 그 가운데 동래 포졸에 체포된 사람이 8명이었다. 8명은 동래의 사형장인 장대에서 군문효수를 당하였다.


8명의 순교자 가운데 양재현 마르티노(이하 양 마르티노)의 순교기록이 남아있다.


동래 북문 밖 신내동에 살았고 좌수였던 양 마르티노는 박해의 소문에 불안해하던 어느날 마침내 포졸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올것이 왔다는 각오로 용모를 갖추고 포졸을 따라 나섰다.

그는 동래부사의 배교 강요에 태연히 "예, 천주를 믿사옵니다"고 답하고는 매질을 감수했다.

하옥된 며칠 후 옥쇄장이 돈을 주면 몰래 빼내주겠다는 제의를 받아들여 피신하였다.

이 사실을 알고 화난 부사가 나졸을 집에 보냈는데. 나졸들이 돈을 요구하자 그의 부인이 돈을 주어 나졸들은 돌아갔다.


피신해 있던 양 마르티노는 부인의 전갈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마음을 놓고 있던 중 다시 들이닥친 나졸들에게 붙잡히게되었다.

상황을 돌이키기 힘들게 되었음을 느낀 양 마르티노는 마음을 정하고 가족들에게 함께 가기를 청하였으나. 가지않으려하자 가족들에게 천주와 성모님을 잊지말고 열심히 수계하라고 당부하고 떠났다.


양마르티노는 곤장을 맞으며 배교를 설득 당했다. 믿음을 굽히지 않자 동래부사는 통영 우수영으로 그를 이송했다. 우수영에서는 인두에 지져지며 배교를 강요당했다. 그가 혼절하면서도 믿음을 굽히지 않자, 다시 동래부사 아문으로 이송되었다.

옥에서 먼저 잡혀온 교우 일행과 반갑게 만나선 함께 즐겁게 순교하기로 손잡았다.

8월 19일 오전 9시쯤 남녀 교우 8명이 사형장인 장대로 호송 되었다. 장대(1)에는 부사 정현덕이 높이 좌정하여 앉고, 영장의 지휘아래 수십명의 군인이 좌우에 나열하고 있었다.

부사가 배교를 하라고 타일렀으나 교우 8명은 마치 의논이라도 한듯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일제히"가세 가세, 천당으로 가세!"라고 하였다. 그러자 관장은 "한명이라도 배교를 한다면 모두 살려주겠다." 타일렀으나 이정식 요한(이하 요한)이 큰소리로 "배교 못합니다"하고 잘라 말하였다.


이에 관장은 형졸에게 말하여 마지막 잔상을 갖다 주라고 하였다.

잔상이 갖춰지자 8명 모두는 성호경을 외우고 요한만이 술 한잔을 마시고나서

"오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던 성로의 신공을 묵상하면서 주를 따라가자.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하였다. 부사는 "마지막으로 누구든지 한마디라도 좋으니 배교하라" 달래었으나 모두 한 목소리로 "못합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부사는 극도로 흥분하여 영장에게 "저 연놈들을 속히 베어라"고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이리하여 8명은 영광스럽게 순교하였다.


그때 구경틈에 끼어있던 요한의 가족들 및 친지들은 순교하는 광경을 자세히 보고 있다가, 구경꾼들이 다 헤어지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순교자들의 효수된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다.(2)


양 마르티노가 순교할 당시의 나이는 56세,

이정식 요한은 80여세였다. 이정식 요한은 동래 사람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동래 병영의 장교로도 있었던 무술이 비범했던 인물로,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에는 무관직을 사임하고, 전교에 전력을 다하며 동래의 전교회장으로 있었다. 박해가 확대되자 식구들을 데리고 기장으로 울산으로 피신했다가 울산에서 체포당하였다.

8명의 순교자 가운데는 그의 아들 이관복 프란치스코, 며느리 박소사 마리아, 조카 이삼근 베드로가 포함 일가족 4명을 포함한 요한의 대자인 양재현 마르티노, 이관복 야고보, 차장득 프란치스코, 옥조이 바르바라 등 8명이 순교 하였다.


(1)장대 : 부산시 수영구 광안4동 546-4 주택가 속에 위치하여 있다.

            여러 증언과 자료를 통하여 1977년 7월17일 당시 광안본당 주임신부에 의해 발굴

            1987년 6월 광안성당은 신자들의 성지 조성헌금으로 현 장대 인근 땅 160여평을 확보하여

            공사를 하여 현재까지 이어져오고있다.


(2)순교자들중 이정식 회장의 가족 4명의 시신은

    부산 가르멜 수녀원 뒷산(동래구 명장동 산98)에 묻혔다가 1977년 9월 19일 오륜대 순교복자기념관

    (현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뒷동산으로 옮겨 안장되었다. 이때 나머지 4명의 순교자들은 시체를 찾을수

     없어 기념비만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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