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와 개척

동래지역의 교우촌

동래지역은 천주교가 경남 지역에 전파되기 시작할 무렵에
최양업 신부와 다블뤼(Antonie, Daveluy) 주교가 전교를 한 곳으로 이미 1860년대 초에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조선인으로 두 번째로 사제품에 오른 후(1)
1849년 말에 입국한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경상도 남부에 여러 차례 전교를 했고, 동래 지방에도 한번 순회한 일이 있다.(이후 다블뤼 주교가 경상도 남부 지방을 담당하여 순회)

당시 소백산의 이곳 저곳에는 전라도나 충청도에서 박해를 피해 산간으로 은신처를 찾아간 교우들이 어렵게 생활하며 공소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최양업 신부가 울주 죽림에 은신하면서 전교하는 동안에는 동굴에 기거하며, 교우들과 생계를 유지하였고,
그러한 산간에 신앙공동체의 교우는 가까운 동래에도 이주하며 신앙을 전파하여 교우집단이 형성되었을것이라고 보고 있다.

1863년 민란이 여러 지역을 휩쓰는 혼란 중에 사사로운 박해가 교우에게 가해졌다.

양산에서는 교우 7명이 고발당해 하옥되고, 교우의 집들이 불태워지고, 마을에서 쫓겨나는데.
동래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1866년 병인양요가 있은 후 이 무렵 초량왜관 부근에서 천주교 교우 5명이 관에 체포되는 일이 일어 났다.

이 당시 체포된 교우들은 비밀교섭(2) 을 하려한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러한 계획이 체로로 탄로나 교우들에 대한 수색이 시작되고 동래 울산 등지에 피난하여 살던 많은 천주교인들이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1)최초의 신부 :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2)비밀교섭 : 일본이 서양과 통상을 맺은 이후 신앙의 자유를 허락한 사실을 알고, 일본인과 상통하여
                  조선에도 신앙의 자유를 얻도록 서양인에게 연락을 취해달라는 교섭을 취하려함

  1. 22년도 사목협의회 임원 임명장 수여식(22.01.02)

  2. 조정숙 그라시아 수녀님 환영식(22.01.02)

  3. 1월 성수예식(22.01.02)

  4. 천주의성모마리아대축일(22.01.01)

  5. 성탄대축일 어린이행사(21.12.25)

  6. 성탄대축일 낮미사(21.12.25)

  7. 성탄성야미사 (21.12.24)

  8. 교리교사 근속시상(2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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