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당신에 앞서 파견하시며 하신 당부의 말씀과 제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파견 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파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 세상 속으로 들어가듯이, 우리 역시 예수님에게서 세상 속으로 파견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니 오늘 주님의 말씀 역시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당부의 말씀이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하고 당부하십니다. 이 말씀은 말마디 그대로의 극단적인 가난을 요구하시기 보다는 파견의 목적을 흐리게 하는 것들을 경계하라는 당부로 이해됩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많은 경우에 목적보다는 수단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부차적인 것에 마음을 잃어서 본질적인 것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지고 누리는 많은 것들은 실상 우리 삶의 목적도 본질도 아니며 오히려 수단이고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그것들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게 되면, 참다운 본질과 목적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내 삶을 통해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지금 내가 마음을 쓰고 있는 그것이 참으로 내 삶의 목적이나 본질인지 되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더욱 알차고 가치 있게 채워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목적과 수단을, 본질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고, 수단을 수단으로, 부차적인 것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평화를 빌어주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평화를 받을 마음도 없고 그럴 준비나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제자들이 빌어주는 그 평화는 제자들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 자신의 진심과 선의를 이해해주지 못할까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굳이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 말씀을 들으면, 그런 걱정이나 염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나 평화를 빌어주고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나의 진심과 선의를 상대방이 받을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에는 다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실상 나의 선의, 나의 기도, 나의 축복, 나의 평화는 상대방에게서 다시 되돌려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는 결국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이웃을 위해 내가 봉헌한 모든 것은 결국 나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신 당부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서 묵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참으로 알차고 가치 있게 채워 나가기 위해서 본질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고, 수단이 목적을 잃어버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또 세상 만물에게 행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나에게 돌아오는 것임도 깨달아야 합니다. 나 역시 이웃 사람들 가운데 사는 사람이고, 세상 만물 속에 있는 존재라는 것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더욱 가치있고 알차게 채워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