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98호 2016.09.04 
글쓴이 김상효 신부 

네로와 BJ 그리고 혐오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루카 14, 27)

김상효 신부 / 신선성당 주임 airjazz@hanmail.net
 
 ‘네로와 BJ’, 우리 본당에서 몸 붙이고 사는 고양이 두 마리의 이름이다. 두 녀석 다 어미들이 키우다가 이소하는 과정에서 낙오된 고양이들이다. 어릴 때 병치레도 많이 해서 병원 신세도 지고했지만, 지금은 어엿하게 자라서 주일학교 꼬맹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깡패’라고 내가 이름 붙여준 또 다른 고양이가 등장했다. 녀석은 카리스마 넘치는 몸매와 몸짓으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수고양이. 원래 우리 본당을 영역으로 해서 살던 놈인데 네로와 BJ가 못마땅했던 모양. 매일 와서 사랑스런 네로와 BJ를 괴롭힌다. 밥도 뺏어 먹고, 남의 집을 차지하여 들어앉기도 하고, 심지어 폭력도 행사했다. 네로와 BJ의 몸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녀석을 응징하자!”몽둥이도 들고, 신발을 벗어던지기도 하고, 아무튼 쫓아내려 애썼다. 그래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든 생각.‘나의 이런 응징은 윤리적으로 타당한가?’고민이 되었다. 내가 아무리 우리집 고양이 두 마리를 애지중지 여긴다고 한들, 나는 엄연히 동물학대자였다. 어느 날 강론 시간에 교우들에게 요청했다.‘저의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누가 묵상을 좀 해서 저에게 충고해 주십시오.’라고...
  혐오는 혐오일 뿐이다. 내가 혐오를 통해 지켜내고자 하는 가치가 아무리 숭고하다고 해도 나는 그저 볼썽사나운 혐오자일 뿐이다. 북한을 혐오해서 대한민국의 숭고함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을 혐오해서 남성의 가치를 드러낼 수도 없다. 남성을 혐오해서 여성성을 들어 높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혐오한다고 해서 우리의 노동시장이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무슬림을 혐오한다고 해서 평화의 샘물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성소수자들을 혐오한다고 해서 성(性)의 순결함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혐오의 대상은 대부분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들이다.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십자가이다. 좀 가벼운 십자가를 져 보겠다고 우리는 혐오라는 수단을 동원한다. 나의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종교적 무책임함을 덮어버리기 위해 혐오한다.‘원래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깡패’를 위한 밥그릇도 하나 사야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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