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407호 2016.11.6 
글쓴이 김상효 신부 


죽음에 대한 예의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 38)

김상효 신부 / 신선성당 주임 airjazz@hanmail.net

  미국에서의 경험이다.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가끔 길 한쪽에 십자가와 촛불, 꽃다발과 사진이 정성스레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교통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은 자리에 가족이나 지인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공공의 장소이지만 그 개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사회가 허용하고 또 어떤 누구는 그 애도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방인인 나도 길가의 그 십자가를 보며 잠깐의 기도를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또 다른 경험이다. 장례미사를 마치면 차량이 행렬을 지어서 묘지까지 이동하게 된다. 내가 경험한 그 지역이 한적한 시골이어서 이런 정서가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장례미사에 온 참석자들 전부가 가족당 한대의 차를 몰고 오면 그 행렬의 길이가 만만치 않다. 선두에 주례사제를 태운 차가 서고, 뒤에 운구용 차량, 그 뒤에 가족들의 차량, 뒤를 이어 일반 참석자들의 차량이 행렬을 이룬다. 마치 미사의 입당 행렬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경찰차가 지원된다. 보통 두 대의 경찰차가 나와서 행렬 전체를 호위한다. 교차로를 만나면 다른 쪽 길을 막아서 행렬이 멈추지 않도록 해 준다. 이 장례행렬과 무관한 다른 차량들이 이 행렬을 만나면 보통 반대편길에 멈추어 선다. 그리고 그 차량 속에서 찬찬히 성호를 긋는 사람들도 간혹 볼 수 있다. 모두가 충분히 애도할 사회적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충분한 애도는 죽음에 대한 첫 예의이다. 그 애도를 통해 산 사람이 치유되고 죽은 이에 대한 애정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게 된다. 가로막힌 애도는 정서적 암을 유발하게 되고, 온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증가하는 이유가 된다. 억울하게 죽은 학생들이 아직 충분한 애도를 받지 못했다. 길바닥에서 경찰에 의해 사망한 한 농민에 대한 애도를 아직 다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죽음을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있다. 죽음에 대한 예의는 삶에 대한 예의이다. 우리는 그렇게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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