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28호 2017.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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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상효 신부 |
본당 - 공원
김상효 신부 / 신선성당 주임 airjazz@hanmail.net
사람들이 공원에 가는 이유는 자기 집에 없는 것들이 공원에 있기 때문이다. 잘 정비된 조경물들은 각자의 집에 있기 힘들다. 탁 트인 공터도 그렇고, 맑은 공기도 그렇다. 간혹 적막한 내 집이 낯설어지면 공원에 가서 사람 구경도 한다. 능력이 있어서 공원이 주는 것들을 자기 집 안에 다 갖추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공원에 간다. 우리 집에 없는 것이 그곳에 있으므로...
6.25 즈음의 한국 본당에는 구호물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본당을 찾아와 생존의 숨통을 얼마간 틔울 수 있었다. 70년대와 80년대의 본당에는 정의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있었고, 막힌 언론을 대신할 말길이 있었고, 젊은이들의 문화적 허기를 달래줄 공터가 있었다.
9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경제위기 때 본당에는 세상 고통을 맘 놓고 아파해도 좋을 관용이 있었다. 모든 것이 다 변하고 허물어질 때 변치 않는 그 무엇으로서 본당은 안도감을 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 이후에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져 버린 듯하다. 물론 세상의 변화와 요구와 무관하게 본당이 감당하고 있는 영원한 가치로서의 복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책무와 책무에 따르는 은총은 여전하다. 그러나 봄이 오고 꽃이 펴도 사람들을 공원으로 불러낼 그 무엇을 찾지 못해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교회 안에 상존하는 은총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기획하고 의도하지 않았으나 풍성한 결실을 맞닥뜨리게 될 수도 있음을 잘 알지만, 봄날의 훈풍에도 불구하고 공원 벤치가 덩그런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다.
얼마 전 본당에 있는 낡은 건물을 헐었다. 아까운 공간이었고 애착을 가진 교우들이 있었지만 헐었다. 버리면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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