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라이프’ - 따뜻한 배웅을 할 수 있을지
이미영 체칠리아 /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cecil-e@hanmail.net
한 곳을 향해 온전한 사랑으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자식에 대한 부모 사랑이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눈길을 줘야 마음이 가고 손길도 따라간다. 타인에게는 이렇게 하나가 되어야 마음이 열린다.
로저(유덕화)의 집에서 60년이 넘게 가정부로 일해 온 아타오(엽덕한). 로저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영화감독인 그와 둘이 산다. 정성을 다해 살피는 일. 사랑이다. 그녀는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고 청소를 한다. 빨래를 널며 유리창 너머로 로저를 기다리는 일상은 단순하지만 귀하다. 그녀가 로저를 위해 차리는 음식은 엄마의 마음이다. 아타오는 중풍으로 쓰러진다. 로저에게 부담이 될까봐 요양병원으로 간다. 출장이 잦은 로저는 시간을 내어 그녀를 돌보며 엄마와 아들처럼 변한다.
반 평 남짓한 요양원은 이별과 죽음을 기다리는 공간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마지막을 편히 맞지도 못하는 약한 노인들이 모여 있다. 많은 것을 가진 이도 아무것도 없는 이와 똑같이 빈손으로 가기 위해 거기에 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존재를 잊어버리는 시대다. 풍요롭고 넉넉히 가졌어도 더 가지려고 가족을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은혜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 이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정성스럽게 보낸다. 아타오는 자신의 것이 별로 없다. 일생이 반복되는 단순한 삶이었지만 행복했다.
홍콩 프로듀서 로저의 실화를 바탕으로 감독은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그냥 아타오다. 수수하고 다정한 눈빛의 유덕화도 로저였다.
나이듦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누구도 비켜 갈 수 없는 삶과의 이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되는 날. 로저처럼 따뜻한 배웅을 할 수 있을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