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578호 2020.01.05 
글쓴이 이미영 체칠리아 

런치박스.jpg


 ‘런치박스’ - 따스한 시선이 밥이고, 소소한 이야기가 반찬이다
 

이미영 체칠리아 /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cecil-e@hanmail.net
 

   지독히 외로운 이의 마음은 습기로 젖어있다. 자신도 모르게 곰팡이꽃이 피고 그날이 그날인 일상. 일시정지로 멈추는 순간만이 숨을 돌리는 자유다. 멀찍이 달아난 과거는 후회만 데려오고 사무친 그리움은 외로움만 번식시킨다.

   소통의 창구가 막힌 출구 없는 일상.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는 밥은 차다. 침묵의 덮밥으로 웃음을 잃은 사잔에게 사람의 온기로 지어낸 점심도시락이 배달된다. 햇살 한 움큼이다. 아내와 사별 후 처음으로 맛보는 집밥.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 근육이 살아난다. 시린 마음이 따뜻해진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는데 정말 그럴까?

   남편과 소원해진 일라가 남편을 위해 만든 도시락이 왜 잘못 배달된 것일까?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다바왈라(도시락 배달지기)들은 바쁘다. 120년이 넘게 뭄바이에서 이루어지는 도시락 배달 시스템은 인도의 문화를 보여준다. 신선하다. 저 많은 도시락이 주인을 찾아갈까 싶은데 그들만의 기호와 읽어내는 방식으로 실수의 오차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녀의 휑한 마음처럼 싹싹 다 비운 도시락을 받은 일라.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는 쪽지 편지로 시작되는 소통. 그들은 마음의 창을 조금 열었는데 산들바람이 들어온다.

   빨라지고 높아진 세상이 너무 화려하고 눈이 부셔서 보이지를 않는다. 그 속도를 따라가고 좇다 보니 우리는 다정함을 잊고 산다. 사람이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눈물을 짓고 웃어야 하지 않을까. 곁에 아무도 없으면 자꾸만 잊어버리는 것들. 그러기에 기억을 잃고 순간을 잃고 마음을 챙기는 따스한 밥도 거르고 허기져 있는지 모른다.

   감독은 어쩌면, 자신을 바라봐주는 따스한 시선이 밥이고, 마음을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가 함께 먹는 즐거운 반찬이라고 도시락을 건네는 것 같다. 지금을 사는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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