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596호 2020.05.10 
글쓴이 이미영 체칠리아 

‘플립’ - 내면의 아름다움을 찬찬히 살피라고
 

이미영 체칠리아 /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cecil-e@hanmail.net
 

   겨울나무일 때는 모른다. 옷 벗은 모습에 눈길도 가지 않는다. 꽃이 피고 잎이 돋았을 때야 보인다. 봄처녀의 볼처럼 발그레 붉어지는 복숭아나무라는 것을.

   나무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만 본 것이다. 줄리와 브라이스가 그랬다. 앞집으로 이사 온 브라이스에게 첫눈에 반한 줄리, 그런 줄리가 귀찮고 싫은 브라이스. 그들의 마음에 사랑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누구나 눈부시게 다가오는 첫사랑이 있다. 감독은 자신의 성장기였던 195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했다. 둘의 서로 다른 관점을 차례로 이야기하는 연출이 재미를 더해준다. 저마다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하게 한다.
   줄리는 무화과나무 위에서 바라본 풍경을 브라이스에게 보여주고 싶어 올라오라고 한다. 브라이스는 핑계를 대며 거절을 한다. 줄리는 같은 장소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란다. 나무가 있는 자리로 이사 올 사람이 거추장스럽다고 자르려고 했다. 줄리는 나무 위에서 울부짖는다. 화가인 아빠는 무화과나무를 그려주며 위로한다. 나무 위에서 본 풍경을 절대 잊지 말라고! 줄리의 가슴에 심은 나무는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브라이스의 할아버지는 괜찮은 줄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손자에게, 일생에 한 번 무지개같이 변하는 줄리 같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삶의 연륜에서 오는 철학이다.

   영화는 첫사랑을 통해서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보라고 한다. 그간 겉모습만 보았다면 이제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찬찬히 살피라고. 그래야 복사꽃이 겨울을 잘 지내고 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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