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눈
정효모 베드로
구포성당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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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형제가 이렇게 물었다. “형제님은 본당, 꾸르실료, 각 단체에서 많이 봉사하시면서도 성당 미사도 거의 빠지지 않는다고 하시던데 왜 그렇게 열심히 성당에 다니십니까?”와 같은 물음에 오래전 했던 대답과 지금의 대답은 전혀 다르다. 전에는 신앙학교, 교리신학원에서 배운 신학적인 용어를 구사하면서 상대방이 알아듣는지는 별로 개의치 않고 열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잘 죽을려고.”라고 쉽게 말한다. “어떻게 하면 잘 죽습니까?”하고 물으면 “흘러가는 물에 내 몸을 맡겨라. 그 물은 주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의 물에 내 몸을 맡겨라. 주님 사랑에 내 몸을 온전히 맡기고 깨끗해질 때 내가 죽을 때 주님 앞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가져갈 수 있는 보화를 열심히 캐어서 하늘에 쌓아둔다. 그것이 잘 죽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Hodie Mihi, Cras Tibi. 로마 어느 공동묘지 입구와 대구 성직자묘지 입구에 쓰여 있는 문구인데 오늘은 내가 죽어 묻혀 있지만 내일은 당신의 차례다. 내일은 아무도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생명의 시간은 오직 주님만이 알고 계신다. 언제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지 모른다. 언젠가 주님께서 부르실 때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 앞에 가서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을 준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내 영혼의 눈이 열려 있어야’ 그것을 알 수 있다. 내 몸이 깨끗해질 때 ‘내 영혼의 눈이 열린다’. 영혼의 눈이 열려 있는 사람과 닫혀 있는 사람의 차이는 주님을 나의 생활 중심에 두느냐, 아니면 내가 중심이 되고 주님을 나의 뒤에 두느냐의 차이다.
주님이 중심에 있는 사람은 매사에 감사할 줄을 아는 사람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주님이 주셨음에 감사를 드린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주님이 내 중심에 없고 나 위주로 사는 사람들은 매사에 교만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영혼의 눈이 열려 있는 삶은 주님께서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지 잘 알고 스스로 찾아 나서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을 하늘에 쌓아둔다. 과연 나는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나는 매사에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나의 중심에 두고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