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탁은수 베드로
광안성당·언론인
fogtak@naver.com
본당의 보좌신부님은 표정이 참 밝습니다. 미사가 끝나면 신자들에게 일일이 바쁜 고개를 숙이며 미소 띤 인사를 나누시는 모습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집니다. 앞으로 사제생활에 별의별 궂은일을 다 겪으실 텐데 하는 걱정과 그래도 신부님의 미소가 오랫동안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듭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웃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셨을 리가 있을까요? 5천 명을 먹이셨을 때,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를 모두 헌금했을 때, 또 직접 손을 얹어 축복하신 어린이들을 보셨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흐뭇하셨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예수님은 세 번 우셨다고 합니다. 세 번만 우셨을까요? 억압받는 이웃들에 대한 연민, 겟세마니에서 털어놓으신 극한의 근심과 번민, 제자와 군중들의 배신, 십자가의 처참한 죽음까지 세상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고통과 슬픔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한 예수님의 고통으로 우리는 구원의 행복을 얻었으니 신자들은 참으로 수지맞은 사람들입니다. 전지전능한 주님을 아버지로 두었으니 든든한 배경도 가졌습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불안해하고 불행을 느낄까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세상살이에 시달리는 나 같은 인간은 하느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가져야하고, 쫓겨나지 않을 집도 있어야하고, 아이 낳고 키우기도 쉽지 않다보니 하느님보다 세상의 일에 마음을 두고 사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돈, 권력, 명예는 노력해도 가지기 어렵고 가지면 더 가지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깁니다. 세상살이가 점점 힘들고 각박해 지치고 어두운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신앙이란 세상의 것보다 하느님을 선택하고 하느님으로 나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차고 넘치는데 그걸 채우는 내 그릇이 너무 작은 것은 아닌지 부끄럽습니다. 누구나 세상의 직분과 사명이 있으니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내 욕심을 위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의 것을 덜어내고 하느님을 채워야 한다는 걸 알지만 세상의 것에 미련 두고 욕심부리는 나약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미리 이 세상에 오시어 고통을 겪으시고 구원의 기쁨을 주신 예수님께 사사건건 귀찮도록 여쭤보고 응답에 귀 기울이는 건 어떨까요? 사도 바오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 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