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보다 소금

가톨릭부산 2015.11.04 17:25 조회 수 : 15

호수 2159호 2012.05.06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금배지보다 소금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뉴스총괄팀장

업무적인 만남에서 종교나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불문율입니다. 쉽게 합의를 볼 수 없는데다 자칫 논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직업상 사람 만나는 일이 잦은 저도 경우에 따라선 천주교 신자라는 걸 굳이 밝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쳐야 하거나 숨은 정보를 캐내야 하는 경우, 또는 앉자마자 거친 술잔이 돌아가는 식사 자리에서는 혼자 식사 전 기도를 한다고 성호경을 하기가 왠지 어색할 때가 많습니다. 역시 난 불량 신자인가 봅니다. 아니면 주님의 자녀로 떳떳하기엔 아직도 부끄러움이 많은 삶을 사는 것이겠죠.
가끔 “탁 기자도 성당 다녀요?” 하고 의아스럽게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초년병 기자 시절에는 누구를 만나던 어깨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거칠고 공격적인 말투로 의심하는 듯 질문을 쏟아내곤 했습니다. 그때 만난 취재원들은 저에게서 평화와 사랑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요즘 성당에서도 당황스러운 광경을 간혹 봅니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성당 주차장에서는 먼저 차를 빼겠다고 무작정 차 앞머리를 밀어 넣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때론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바쁜 사정이야 있겠지만, 성당 문을 나서자마자 양보와 형제애가 남의 일이 된 것은 아니겠지요.
나이 들면서 성당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자주 나눔과 배려보다 성취와 경쟁의 가치를 더 크게 여깁니다. 조용하고 소박한 일상을 갖고 싶은데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요구합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선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 봐야 하는데 그러기엔 세상이 너무 바쁘고 시끄럽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익숙해지면서 하느님과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지난달 치러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가톨릭 신자 73명이 당선됐습니다. 전체 국회의원의 24%가 넘는 숫자입니다. 18대 국회에서는 가톨릭 신자 국회의원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국회는 왜 그렇게 소란스러웠을까요? 정치가 많이 희화화돼 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원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신자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금배지를 내세우기보다 빛과 소금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비록 성호경도 자주 빼먹는 불량 신자이지만 신자 의원들은 그렇지 않겠죠? 성당에서의 모습과 국회에서의 모습이 딴판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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