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여, 날개를 펴라!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 gentium92@yahoo.co.kr
올여름도 중고등, 대학생 13명의 친구들과 함께 인판타 교구에 홈스테이를 다녀왔다. 그중에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는데, 켄이라는 17살 한창 꿈 많은 나이의 소년이었다. 그런데 웬걸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고 그 큰 눈망울에는 눈물마저 그렁그렁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켄은 일본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심하게 왕따를 당했다. 게다가 괴롭힘을 당하고 돌아와도 엄마, 아빠가 모두 일하러 나가고 없어서 아무도 아픈 마음을 달래 줄 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그때는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 날의 섭섭함은 지금까지 마음의 독으로 남아 있었다. 그 상처는 지금도 트라우마가 되어 켄을 몹시 괴롭혔고, 마음의 불안은 급기야 거식증과 호흡 곤란까지 불러 일으켰다. 홈스테이 내내 켄은 불안해했다. 그때마다 일본에 있는 엄마를 찾았고 담당의와 통화를 했다. 몸은 자랐지만 내면은 어릴 적 그대로였다. 단 하루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번은 호스트 패밀리가 정성스레 만든 음식마저 다 토해버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먼 곳까지 이 말라깽이 친구를 불러 주신 주님께 의탁하면서 얼러가며 달래가며 뚜벅뚜벅 함께 걸어갈 뿐이었다.
하루는 켄이 아침부터 공황 상태에 빠져서 프로그램에 함께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수도원 경당에 남아 학교 수녀님들과 함께 켄을 둘러싸고 묵주기도와 미사를 봉헌했다. 은총의 바람이 불었을까? 성체와 성혈을 영하고 켄은 목부터 가슴까지 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링거라도 맞혀서 기운을 차려주려고 마을 의료센터로 데려갔다. 그런데 진료 중에 수녀님이 사온 바나나 튀김을 보더니 켄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먹을 수 있으면 링거를 맞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웃는 것이었다.
이후 이 친구는 조금씩 회복했고 안정을 되찾아 갔다. 또한 함께 한 동료들의 격려도 주위를 향해 닫혔던 켄의 마음을 여는데 한 몫을 했다. 단 1주일, 일생에서 참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켄에게 뭔지 모르지만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분명했다. 올해로 벌써 10년째 교류다. 방문 때마다 특별한 경험을 하지만, 이렇게 켄의 치유를 통해서 과거 전쟁으로 인해 상처 입은 모든 이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주님의 치유의 손길을 새롭게 느낀다. 그 한없는 사랑의 섭리에 감사드리며“주님, 오늘도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고 나지막이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