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안전포구로 찾아오길

가톨릭부산 2015.11.06 04:45 조회 수 : 68

호수 2284호 2014.08.03 
글쓴이 김기영 신부 

인생의 안전포구로 찾아오길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 gentium92@yahoo.co.kr

올해 본당을 새롭게 옮겼다. 거의 8년 만이다. 언어도 문화도 사람도 아무것도 모른 채 일본 선교의 걸음마를 시작했던 오카야마를 벗어나 히로시마 지구로 옮겨왔다. 조금은 익숙해진 선교사의 발걸음으로 다시 새로움의 벽 앞에 서 있다. 마을과 성당도, 사제관도, 만나는 사람들도 모든 것이 새롭다. 변하지 않은 것은 주님과 나뿐이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은 누구를 만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참 설렌다.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인해 여기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이곳에서 먼저 땀 흘린 선배 사제들의 노고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져본다. 

내가 있는 쿠레성당은‘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인데, 그 역사가 참 흥미롭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진해처럼 군항 도시인데, 메이지 시대(1868∼1912)부터 선교사가 활동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1906년 프라네스 신부에 의해 신앙 공동체가 만들어졌고, 1921년 히로시마 주교좌 성당의 위센펠 신부가 10명의 교우들과 함께 해군 소장의 자택에서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최초로 세워진 성당은 현재 경찰서 부근에 지어진 성당이었지만, 1945년 7월 1일 쿠레 대공습 때 불타버렸다. 다시 1949년 전란의 쓰라린 상처를 뒤로하고 주둔군이 쓰던 자재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성당이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그러다가 1952년 예수회 관구장이었던 휘스텔 신부가 새 성당 건축을 제안했다. 당시 쿠레 시민들의 복음선교에 열정적이었던 주임사제 베드로 콧프 신부는 성당건축기금 마련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주둔 중이던 연합군(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국가로부터 모금 운동을 벌였고 이때 상당한 금액이 모였다고 한다. 그 표시로 성당 안에는 성모님의 지상 생애와 천상 영광에 오르신 삶을 그린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었고, 그 밑에는 기부를 했던 각 연합군의 국가명이 새겨져 있다. 1954년 5월 2일, 드디어 이 성당은 세계 평화를 희망하는 많은 은인들의 기도, 희생과 함께 무염시태 성모님께 봉헌되었다. 이렇게 해서 전쟁으로 까맣게 불타버린 사람들의 마음 밭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씨앗이 다시 싹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콧프 신부의 모국인 독일에서 보내온 두 개의 종은 반세기를 넘어 지금도 미사 전에 힘차게 울리고 있다. 이 종소리는 오늘도 인생길에 표류 중인 누군가에게 더는 헤매지 말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나도 이 성당의 발자취를 되새기면서 오늘도 누군가가 인생의 안전포구로 찾아오길 기도하며 성당 문을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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