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성호경

가톨릭부산 2015.11.05 07:55 조회 수 : 107

호수 2206호 2013.03.10 
글쓴이 김기영 신부 

맛있는 성호경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gentium92@yahoo.co.kr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딴에는 노력한답시고 된장찌개나 김치볶음밥도 만들어 보지만, 재료비만 왕창 들어가고 맛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다. 웬만해서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 나지만, 내 손으로 만든 요리만큼은 왜 이리 용납이 안 되는지. 가끔 이웃 성당의 50년, 100년사 기념집을 보면 과거 선배 선교사들은 왜 하나같이 팔방미인이었는지 놀람과 한숨이 뒤섞여 나온다. 요리뿐만이 아니다. 건축, 의료, 교육, 재봉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절로 묻고 싶어진다. 결국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가다 보면 왜 주님께서는 이다지도 쓸모없는 놈을 뭐 하려고 여기까지 부르셨나 하며 생각은 깡통 속으로 빠져들 때가 많다. 

그런데 그 답을 찾았다. 요리를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외식을 자주 하게 되고 그렇게 성당 주변 밥집 할머니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식사기도 하나는 딱 부러지게 배웠는지라 맛나게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다 보면 누군가 흘깃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4년 동안 매일같이 출석도장을 찍었던 우동집 할머니가 하루는 성호경을 긋는 시늉을 하면서 기도인 줄은 알겠는데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다면서 물어왔다. 드디어 입질이 온 것이다. 언젠가 이때가 오리라고 준비해 두었던 싱싱한 답안에 살살 기름칠을 하고 야들야들 구워서 감칠맛 나게 설명해 주었다. 

할머니! 제가 기도하면서 뭔가 중얼거리지요? 그게 성호경이라는 기도문인데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라고 말하는 거에요. 일본에도 야오요로즈(八百万)라고 8백만 명이나 되는 신이 있지요? 세상에 신들이 이렇게 많지만, 제가 믿는 신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한 분 하느님이십니다’라는 뜻이에요. 

또 제가 또 이마, 가슴, 양어깨에 십자가를 긋지요? 이것은 삼위 중에 제2위이신 성자 예수님이 내 구원을 위해 몸소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다는 것을 제 몸의 고통을 통해서 기억하겠다는 의미가 있어요. 

끝으로 이렇게 제가 성호경을 그으면 자연스레 제 신앙이 드러나지요? 그래서 성호경은 제가 가진 가톨릭 신앙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의미가 있어요. 오늘처럼 누군가 할머니같이 용기 있고, 호기심 많은 분이 보고 와서 물어보면 설명해 주고, 그렇게 복음 선교를 하게 되지요.

한번 해 보시겠느냐고 하니, 성호 긋는 폼이 예사롭지가 않다. 혼자 몇 번 해봐서 다 외운단다. 내가 선교하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선교하신다고 했던가? 올해 우리는 ‘신앙의 해’라는 특별한 사순절을 지내고 있다. 많은 기도와 극기, 보속도 좋지만, 먼저 내 모든 기도의 첫 단추인 성호경 안에 믿음을 가득 채워 갔으면 한다.

호수 제목 글쓴이
2181호 2012.09.30  당신의 약함을 통해 그분이 드러나심을 김기영 신부 
2185호 2012.10.28  할머니, 그래 봤자 이미 낚이신 것을 김기영 신부 
2189호 2012.11.25  신앙인의 초심은 감사의 마음 김기영 신부 
2193호 2012.12.23  룸살롱 고해소 김기영 신부 
2198호 2013.01.13  하늘에서 진정 기뻐하는 것은 김기영 신부 
2202호 2013.02.10  내가 받은 새해 선물 김기영 신부 
2206호 2013.03.10  맛있는 성호경 김기영 신부 
2210호 2013.04.07  두려워 말고 나아가십시오! 김기영 신부 
2214호 2013.05.05  고속도로에서 부활 강의를 듣다 김기영 신부 
2218호 2013.06.02  푸른 빛 안고 순례하시는 어머니 김기영 신부 
2222호 2013.06.30  그 밤, 주님의 집으로 초대받은 이 김기영 신부 
2226호 2013.07.28  구원의 초대는 소리 없이 김기영 신부 
2234호 2013.09.15  천사를 데려오셨네요 김기영 신부 
2243호 2013.11.10  성모님의 눈빛으로 김기영 신부 
2251호 2013.12.29  성탄 구유 속에 끼이고 싶다면 김기영 신부 
2261호 2014.02.23  때로는 요셉처럼, 때로는 마리아처럼 김기영 신부 
2269호 2014.04.20  사랑 앞에 더 이상의 악이 없음을 김기영 신부 
2277호 2014.06.15  앗쑴! 히로시마 김기영 신부 
2284호 2014.08.03  인생의 안전포구로 찾아오길 김기영 신부 
2294호 2014.10.05  소년이여, 날개를 펴라! 김기영 신부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