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고해소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gentium92@yahoo.co.kr
지난달, 피정 후 동료 사제가 부임한 성당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했다.(2012.11.25. 2189호 참조) 교우들과 식사를 마치고 동료 사제는 어디 좀 갈 곳이 있는데 함께 가 줄 수 없겠느냐며 어려운 부탁을 해왔다. 그냥 본당 일이면 혼자 다녀와도 될 텐데 생각하면서도 무슨 일일까 궁금한 나머지 신부들 3명이 함께 따라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술집이었다. 그것도 그냥 술집이 아니라 아가씨들이 나오는 술집이었다. 들어가니 어두컴컴한 조명과 깜빡거리는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런 곳에서 뭘 하자는 것인지’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동안 아가씨들이 들어와 앉았다. 서먹한 분위기 속에 술잔이 몇 순배 돌았다.
사실은 그랬다. 이곳은 한국 사람이 주인으로 있는 술집인데, 이 집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의 큰 언니와 동생 2명이 교우였다. 그리고 큰 언니의 부탁으로 제발 신부님들이 오셔서 동생들 냉담 좀 풀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언니 눈에 타국에까지 와서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가는 동생들의 모습을 보기가 퍽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큰 언니는 비록 술집에서 일하지만 주일미사만큼은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왔단다.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토요일 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졸음을 참아가며 아침 미사에 참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때마침 본당에 한국인 동료 신부님들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부탁을 해온 것이다.
지하에서 펌프로 물을 끄집어 올리기 위해서는 마중물이 필요하고, 꽉 막힌 배수관을 뚫기 위해서는 불순물을 녹이는 강한 산이 필요하다. 냉담을 풀게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무언가에 사로잡혀있는 그들의 마음을 풀기 위해서 마중물과 산이 필요했다. 이에 신부들의 센스가 빛났다. 먼저 부모와 가족,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노래로 그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본고향, 예수님 마음으로 이들을 초대했다. 이윽고, 이들은 눈물을 글썽거렸고, 그 마음은 자연스레 고해성사로 이어졌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이들의 고해가 끝난 뒤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형제가 와서 자신도 냉담 중이라고 했다. 과거 열심히 했지만, 사업이 부도나고 도망을 오면서 신앙생활도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이 형제도 그 자리에서 주님과 화해하고 돌아갔다. 15년 만이었단다.
곧 대림이 끝난다. 예수님은 구만리 하늘을 쪼개고 우리 죄인을 구하러 한달음에 오시는 당신 마음을 이렇게 가르쳐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