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남고 싶은 산

가톨릭부산 2015.11.02 16:41 조회 수 : 52

호수 2069호 2010.09.26 
글쓴이 강문석 제노 

산으로 남고 싶은 산

강문석 제노 / 수필가, hepi2u@hanmail.net 

서녘으로 설핏 해가 기운 탓일까. 아직은 황량하기만한 신도시를 온몸으로 내려다보고 선 오봉산 자락은 더없이 고즈넉하다. 초입에서 중턱 바위틈 사이에 숨어있는 옹달샘까지는 경사도 느리지만 계곡을 따라 걷다보니 자연스레 생겨났을 그 옛 산길을 그대로 넓힌 때문인지 찾는 이에게 친숙감을 더해준다. 뒤에 돈을 들여 고치면서도 인공적인 것에 대한 부조화를 생각했던지 옛 모양을 살리느라 애쓴 흔적이 여러 군데 눈에 띈다. 

느린 걸음으로 오르다가 약간 속도를 내느라 고개를 드니 가로등이 산중턱 약수터까지 따라 올라왔고 그 흔한 체육시설도 빠지진 않았다. 자연도 밤에는 나름대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면 그곳에 살고 있는 생태계 생각도 했어야 한다.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불빛은 동식물의 종에 따라선 고문 행위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다가 잠을 재우지 않는 방법으로 고문을 가하던 시절에 우린 얼마나 절망했던가. 체육공원에서도 멀쩡한 운동기구는 그대로 두고 죄 없는 나무를 못살게 굴면서 건강을 증진해 보겠다는 이들을 곧잘 만나게 된다. 

능선까지 오르는 마지막 구간은 거의 수직으로 가팔랐다. 하여 곧추선 2백여 미터엔 밧줄을 매달아 놓았다. 그런데 그 밧줄은 별도의 지지대 없이 사오 미터 간격으로 살아있는 신갈나무에다 묶어놓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체중을 실으면 나무가 고스란히 스트레스를 받는 구조였다. 인간이 산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산사마다 대형 스피커로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음을 쏟아내고, 호연지기를 맛보겠다고 함부로 내지르는 야호! 소리는 도를 넘은지 오래다. 외국에선 조난되었을 때만 구조를 요청하느라 큰소리로 교신하기 때문에 그들이 지구촌 어느 산에서건 이러한 한국인을 만나면 뜨악해진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으면서도 산은 마음이 깊은 때문인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골프장과 초대형 댐과 같은 난개발에 휘둘리게 되면 한 번씩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정작 재난을 당한 군상들은 그때만 울고불고 나면 그만이니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은 자연 보호 방법이라 했다. 산이 산으로 남기를 원하는 그 마음엔 분명 우주 만물 속에 숨 쉬고 있는 우리 인간을 향한 측은지심도 없지 않을 것이다. 창조주께서 만드신 대자연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마는 나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산에서 날릴 때라도 산에게는 제발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일을 삼가야 하겠다. 작은 실천이지만 신음하는 산을 살리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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