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나들이

가톨릭부산 2015.11.04 07:49 조회 수 : 21

호수 2133호 2011.11.13 
글쓴이 정경수 대건안드레아 

부끄러운 나들이

정경수 대건안드레아

그날은 몹시 추웠다. 지리산 계곡으로부터 경호강을 타고 내려오는 골바람이 유난히 매서웠다. 그러나 성심원 글라라의 집 큰 식당방은 화기와 사랑이 넘쳤다. 준비해간 목도리를 한 분 한 분 목에 걸어 드리고, 손가락이 문드러져 밀감조차 깔 수 없는 할머니들에게 밀감을 까주며, 잡은 손은 유난히 따뜻한 온기로 전해왔다. 내어놓은 칡술을 대접 받으며 춤과 노래가 어우러졌다. 사람의 정이 진정으로 그리운 분들과의 시간은 우리가 위로를 받는 시간이었다. 그날 밤의 짙은 고백 시간과 아침 햇살을 받으며 “봉사자의 삶”을 들려주는 안젤로 수사신부님의 강의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이곳 일박 2일의 피정을 통하여 겨울 차 꾸르실료 봉사활동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번엔 내가 참여하는 문학단체에서 하루 일정으로 소록도(小鹿島)를 다녀왔다. 작은 사슴 같다는 아름다운 이 섬이 어쩌면 그렇게 멀어 보이고 가기 어려운 먼 전설의 섬처럼 느껴 왔던가? 이것은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각인 시켜온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가 우리 환자들을 강제 수용하여 불임수술, 강제노역 등으로 인권을 짓밟았기에 이곳에 들어오면 이 세상 마지막인 줄로 알았다. 60여년 세월 고통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유형의 섬이 이제는 아름다운 관광지가 되었다. 많은 환자들이 완치되어 섬을 떠나고 이제는 환자가 줄어들었다하니 이 병도 이제 첨단의술로 극복해 나가는가 보다. 천연두가 완전히 퇴치되었듯이 천형의 이 병도 사라지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본다. 

요산 김정한의 단편 ‘옥심이’를 보면 옥심이 남편 천수가 마을에서 내 건너편, 외따로 살던 움막을 태우고 소록도로 간다는 장면이 나온다. 마지막 죽음의 길을 간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동상이나 세우려고 하는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 모두의 천국’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열망이 이루어졌는지는 확인 할 수 없었으나, 유형의 섬이 복된 낙원이 되었다면 나의 편견일까? 주민들의 삶의 애환이야 어찌 한 둘이랴. 

수년전 산청 성심원에서의 일박2일을 문득 돌이켜보고 오늘 이 자리에 서니, 삶의 준엄한 역사적 현장에 서서 몇 줄 작품의 꼬투리를 잡으려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외국인 두 수녀의 이야기는 나의 이런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7순이 넘은 오스트리아인 두 수녀는 40여년을 환자들을 돌보며 사랑을 심어 주다가 이제 간다는 이별의 말도 없이 섬을 빠져 나갔다는 대목에서였다. 더 늙어 주민들의 수고로움을 이제 덜어 주어야겠다는 일념에서란다. 나는 부끄러움을 안고 소록도를 물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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