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152호 2012.03.25 
글쓴이 김기영 신부 

바오로 가신 길 따라 걸었더니...

김기영(안드레아) 신부

지난달, 사제 서품 10주년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10년 전 부제반 때도, 많은 분들의 배려로 동기들과 함께 이스라엘, 이집트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초보 사제로서의 삶을 시작하려는 즈음에 복음의 현장학습은 내 무른 신앙에 견고함을 더해 주었다. 
그렇게 지난 세월을 감사로 매듭하고, 앞으로의 10년, 새로운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드릴 것과 약속하신 이끄심에 충실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면서 터키, 그리스를 다녀왔다. 성지 곳곳에 순교의 이정표로 오는 이들을 믿음과 구원의 길로 안내하는 성인들의 손짓이 보이는 듯했다. 특히, 바오로가 세웠던 초대교회 안에서조차 공동체 안의 갖가지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고심했던 사목자들의 노고와 교우들의 희생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은총이었다. 
2주간을 함께 하면서 특히, 미사와 말씀의 은총을 나누는 동기 신부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나마 예수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신학교 시절, 익살스러운 장난을 주고받던 아이의 순진함은 그대로 남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사목 일선에서 고군분투하며 영적으로 지친 신자들을 격려하던 야전 장교로서의 원숙함도 묻어났다. 매 미사를 마치고, 다음 순례지로 떠나는 우리들에게 성인들께서는 주님 제자로서 지금껏 잘 견뎌왔으니 힘내라고 “파이팅!”을 외쳐주시는 듯했다. 
그 많던 순례지 중 잊지 못할 장소가 있다. 에페소의 성모님 집터다. 성모님께서 말년에 사도들과 함께 지내셨던 장소인데, 이곳은 1878년, 태어나서 자기 고장을 떠나본 적이 없는 독일 수녀 가타리나 에머리히가 계시를 받고, 1891년 나자렛 신부가 탐사반을 조직해서 발견한 곳이다. 이어, 1961년 교황 요한 23세께서 성지로 공식 선포를 한 곳이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하기 전 나는 마음이 몹시 불편한 상태였다. 본당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떠나온 문제도 그렇거니와 좀 더 우리가 하나 되기를 바라는 욕심이 앞서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날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는 이야기였는데, 사제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한 마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1, 41)는 말씀이 내 심금을 울렸다. 성체를 모시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30분가량 나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상처 난 마음에 새살이 돋아나고, 어느새 나는 나를 아프게 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사순절이 무르익어간다. 예수님은 당신 수난의 길을 함께 걷는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은 참으로 믿을만한 것임을 이번 순례를 통해서 새롭게 알려주셨다. 바오로 가신 길 따라 걸었더니, 그 길 끝에서 주님이 나를 맞이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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