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음으로

가톨릭부산 2015.11.03 09:48 조회 수 : 15

호수 2079호 2010.12.05 
글쓴이 김종일 

어머니의 마음으로

김종일 노동사목사무국장

며칠 전 자동차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한 노동자가 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나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 하니 다행입니다. 저는 이처럼 사회의 이목을 끄는 자살문제가 생기면 인터넷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보통은 상반된 의견으로 나뉘더군요. 한쪽은 이유 불문하고 자살은 비겁한 자나 실패자가 선택하는 최악의 회피라는 의견이고 또 다른 한쪽은 자살한 사람의 입장에 동조하여 동정론 내지 옹호론을 펴는 의견입니다. 덧붙이자면, 노동자들의 분신에 대한 반응에는 유독 사회 불안 조성이나 국가전복을 노리는 불순한 자들의 선동이라는 극단적 의견들도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정치색이나 이념색이 덧칠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주변에서 만나는 신자분들 생각을 들어보면, 자살 또한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니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긴 용서받지 못할 대죄에 해당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실제로 옛날 교회법에는 장례미사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이단자, 이교자, 배교자와 더불어 자살한 사람도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1983년에 교회는 자살한 사람을 이 조항에서 삭제함으로써 자살한 사람을 위한 장례미사나 사도예절를 허용하였습니다. 교회의 이러한 변화는 자살한 사람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은사였던 심상태 신부님께서는 “우리가 바리사이인들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윤리의 잣대는 엄격하고 공정하게 적용하되 윤리를 어길 수밖에 없었던 당사자의 입장 또는 상황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했습니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이 1위라는 수치가 보여주듯 한국에서 자살하는 사람은 매년 늘어나고 있고, 자살의 이유도 성적 비관, 가정 경제의 어려움, 직장에서의 해고 등 여러 가지입니다. 하지만 편견 없이 그 상황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자살이란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한 사람의 자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살을 막을 수 있는 참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에 분신을 한 황씨는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차별 받는 사회를 고발하고 떳떳한 노동자로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이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664호 2021.08.15  하느님, 우리 축복해주세요! 김진수 신부 
2764호 2023. 7. 2  진로 선택과 삶의 방향 잡기 file 김지영 마틸다 
2662호 2021.08.01  아무것도 너를 김지연 안젤라 
2636호 2021.1.31  땅구에서 온 선교사 김주현 신부 
1975호 2009.01.11  성찰(省察) 김종일 요한 
1999호 2009.06.28  복음화에 대한 짧은 생각 김종일 요한 
2038호 2010.02.28  내 삶의 스승인 뇌성마비 소년 김종일 요한 
2062호 2010.08.15  우리는 불법 사람이 아닙니다. 김종일 요한 
2101호 2011.04.17  예수님을 사건으로 만나자! 김종일 요한 
2012호 2009.09.20  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김종일 
2046호 2010.04.25  교회에서 그런 일을 왜 합니까! 김종일 
2079호 2010.12.05  어머니의 마음으로 김종일 
2281호 2014.07.13  내 마음 같아 김종대 가롤로 
2296호 2014.10.19  양들의 낯선 이야기 김종대 가롤로 
2317호 2015.03.01  십자고상(十字苦像)을 바라보면서 김종대 가롤로 
2332호 2015.06.14  눈에 보이는 게 없어서 김종대 가롤로 
2475호 2018.02.11  선 線 김종대 가롤로 
2522호 2018.12.30  하느님 안에 붙어있는 다섯 손가락 김종남 신부 
2180호 2012.09.23  짧은 3시간, 짧지 않은 3시간 김정화 수산나 
2289호 2014.08.31  길에서 길을 묻다 김정렬 신부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