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성사

가톨릭부산 2023.03.08 13:33 조회 수 : 15

호수 2748호 2023. 3. 12 
글쓴이 김태수 클레멘스 
종부성사

 

 
 
김태수 클레멘스
사직성당 · 시인
tsk605@hanmail.net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세상에 태어나서 열심히 살다가 늙고 병들어 종래에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는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운명이다. 생물학적으로 영원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도, 철학자도, 종교인도, 의사도, 재벌도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신의 섭리다. 우리 시대의 천사 마더 데레사 수녀, 멀리 아프리카 남수단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 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제를 비롯한 모든 종교 지도자는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고, 어렵고 힘든 상황의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장황한 이야기는 기실 나의 어머니 루시아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평소에 그리도 좋아하셨던 꽃을 가꾸시며 영원한 안식 중에 계시리라 믿고 있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어머니는 말년에 췌장암으로 1년여간 병실에서 괴로운 날들을 보내셨다. 장기간 가혹한 통증으로 투병 중이시던 어느 날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병원으로부터 통보받았다. 자식으로서 그 시점에 해 드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잠시라도 통증 완화를 위한 모르핀 처방을 주치의에게 부탁드리는 일이 전부였다. 억장이 무너졌다. 이때 교우들이 신부님께 종부성사를 의뢰할 것을 권했다. 연락을 받고 달려와 주신 신부님은 모든 예를 갖추시고 병실에서 가족 모두를 나가게 한 뒤, 단 두 분이서 마주하고 뭔가 최후의 대화를 나누시는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난 후 성사를 마친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어머님께로 갔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까지의 고통스러웠던 표정은 간데없고 한없이 행복하고 편안한 표정이셨다. 그날로부터 그렇게 편안한 모습으로 이틀을 더 지내시던 어머님은 두 번의 깊은 호흡을 마지막으로 꼭 쥔 내 손을 놓고 눈을 감으셨다. 
 
   나는 지금도 많은 날 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시다 갑자기 찾아온 어머님의 평화가 놀라울 뿐이다. 어머님도, 신부님도 내게 말해주지 않으셔서 내가 알 길은 없지만 두 분이 무슨 대화를 나누셨기에 한순간에 그렇게도 평온해질 수 있었는가가 궁금하고 신비스러웠다.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행하는 성사가 영혼까지 다스리는 위력을 가진 것 같아 새삼 사제의 고귀한 인도의 손길에 감사하고 있다. 지금도 어머님 영전에 새겨진 “주님, 인간의 종낙이 무엇이길래 어찌 이리도 저를 돌보시나이까!”를 읽으면 어머님의 목소리인 듯 생생하게 가슴이 저며온다.

*종부성사 :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에 놓였을 때 받는 성사를 뜻했으나, 현재 명칭은 병자성이며 병자를 위한 성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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