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상가(喪家)문화는 독특하다. 조문객들이 둘러 앉아 술도 마시고 빈자리 없이 왁자지껄 해야 장례를 제대로 치른 것처럼 생각한다. 최근 다녀온 상가 중의 한 곳도 그랬다. 이른 저녁부터 조문객이 가득 찼고 새벽까지 술잔이 이어졌다. 술기운이 번지면서 조문객들 끼리 이런 저런 시비가 오가기도 했다. 술기운에 눈동자가 흔들릴 때쯤 고인의 영정 앞에 술 한 잔 씩을 올렸고 그 즈음 중년의 남자들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훌쩍거림이 다른 조문객들에게 번지면서 누군가가 체면쯤이야 아랑 곳 없다는 듯 엉엉 울기 시작했다. 위로하던 조문객까지 울먹이면서 상가는 울음바다가 됐다. 평소 눈물을 참고 살아야하는 배 나온 중년 남자들이 한참을 꺼이꺼이 울고 나서야 슬픔을 거두고 고인과의 이별을 받아 들였다. 조문객들 끼리 시비를 다투던 오해도 눈 녹듯 사라졌다. 고인의 죽음을 통해 관계의 정리와 새로운 화해가 생긴 것이다.
떠남과 이별이 새로운 화합으로 이어진 놀라운 장면이 올해 여러 번 있었다. 그 첫 번째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다. 스스로를 “바보야”라고 칭하시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는 말씀을 남기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자기 일에만 바빠 굳어진 국민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열어 젖혔다. 길게 늘어선 추모객의 행렬은 그 자체로 놀라움이 됐고 추기경을 따라 장기기증이 잇따랐다. 가난한 사람의 친구로,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정신적 지도자로, 또 유머를 지닌 따뜻한 인간으로서의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가 알려지면서 종교를 넘어 온 국민이 감동했다. 추기경이 남기신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는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한국 가톨릭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이어서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온 국민을 추모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게 했다. 최근에는 젊고 예쁜 여배우가 죽음을 앞두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올린 결혼식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하지만 이름 뿐 아니라 용서와 사랑의 씨앗을 남기는 위인도 많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고 인류 구원의 길을 내셨다. 테레사 수녀처럼 사랑의 모범을 후대에 남기신 성인들도 많다. 하지만 나 같은 보통사람은 후대에 전해질 희생과 사랑의 업적은 고사하고 남긴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까 걱정하고 산다.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내가 떠난 곳곳의 자리에서 어떤 기억을 남기게 될 지도 궁금하다. 그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바란다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