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구경꾼
탁은수 베드로
어느새 배 둘레에 살이 푸짐해졌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살고 싶은데 제 몸 하나 뜻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 남아도는 영양분이 몸속에 쌓여 건강을 해치는데도 절제는 식욕을 이기지 못한다. 회사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 더미들도 내 뱃살을 닮았다. 일 년에 한 번도 꺼내보지 않는 서류들이 책상 한쪽을 채우고 있다. 언제 필요할지 모른다는 미련 때문에 제때 처분을 못한 채 덩치만 커져간다. 마음속에는 버리지 못한 것이 훨씬 많다. 때늦은 후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 불필요한 걱정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어 기쁨과 자유, 평화가 살 수 있는 자리가 좁다.
욕심을 버려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이야기야 몇백 번은 더 들었다. 하지만 일상의 욕심을 털어내기가 쉽지 만은 않다. 세상 사람들은 넓은 집에 큰 차를 타야 출세했다 하고 돈 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현명하다고 한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희생과 용서는 훨씬 더 어렵다. 제 한 몸, 내 가족 지키기도 버거운데 남을 위해 내 것을 내놓으라니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자기 잘못도 인정하기 힘든데 내게 상처 입힌 사람을 용서하라는 건 예수님이나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기도 했다. 이렇게 신앙 따로, 생활 따로 사는 시간이 늘면서 어느새 난 예수님을 따르기보다 군중들 속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구경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옛글에 “달은 천 번을 기울어도 다시 차고, 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는 구절이 있다. 자연은 스스로의 부활을 이렇게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부활은 예수님만 하신 것이 아니다. 아프고 힘들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거듭난다면 누구나 부활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우리도 나눠 져야하듯 부활도 예수님만의 부활에 그쳐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로 이어져야 구원 사업의 의미가 있다.
사순은 부활을 위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시기다. 수난에 동참해야 부활에도 동참할 수 있다. 하지만 뱃살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나 같은 범부들에겐 그동안 자리 잡은 욕심을 씻어내고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수난이 단순한 고행과는 다름을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따라가려 한다. 예수님과 함께 영광스런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느냐, 아니면 예수님 주변을 서성이는 부활의 구경꾼으로 남느냐의 갈림은 사순시기의 수난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