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38호 2015.07.26 
글쓴이 김상진 요한 

한센인 신자들의 영성을 배웁니다.

김상진 요한 / 언론인 daedan57@hanmail.net

백두대간 끝자락인 지리산맥이 동쪽으로 뻗다가 경호강을 만나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마지막 용트림을 하며 멈춘 웅석봉. 그 봉우리 아래 경호강가에 자리 잡은 경남 산청 성심원은 한센인 신자 마을입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1959년 세워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골집에 갈 때마다 주일 미사를 성심원 성당에서 봉헌합니다. 한센인들과 함께하는 성심원 미사는 찡한 감동을 줍니다.

성당 가는 길에 만난 한센인 신자들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합니다. 세상의 외면과 냉대를 견뎌온 세월의 한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어색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은 외부인들의 긴장감을 사라지게 합니다.

미사 전 파란 눈에 턱수염이 멋진 스페인 출신의 유의배(70) 신부님이 성당 입구에서 한센인 신자들과 거리낌 없이 볼을 비비고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농담을 던집니다. 강론 때면 유 신부님의 열정적인 말씀이 가슴을 때립니다. 

영성체 시간이 되면 저는 열 손가락을 갖고 있음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 몇 개만 남은 신자들은 손으로 성체를 모실 수 없습니다. 신자들이 자리에 서 있으면 신부님들이 다가가서 입으로 모시게 합니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영성체 시간도 여기서는 묵상 거리입니다. 

지난 4월 5일 예수 부활 대축일 때 시작된‘십자가의 길’조성비 모금 과정에서 신자들의 열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성심원 설립 초기인 1966년 정시몬 신부님이 이태리서 가져와 세운 것인데 오랜 세월 풍파에 훼손됐던 것입니다. 새로 조성하면서 십사처를‘유의배 공원’으로 이름 짓고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유 신부님은 1980년부터 성심원에서 한센인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숨진 한센인들의 염습, 입관 등 장례를 도맡아 왔습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신자들은 유 신부님 칠순에 맞춰 십사처를 봉헌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입니다. 주일마다 사목회장이 모금 실적을 보고 하는 것을 들으면서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 만에 수천만 원이 모이더군요. 가난한 한센인 신자들은 깊은 신앙심으로 큰돈을 짧은 시간에 모금해 낸 것입니다.

다시 도시의 본당으로 돌아와 미사를 드립니다. 두 손으로 성체를 모실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해서 성체 앞에서 깊은 절을 합니다. 모금 행사 때마다 가난한 한센인 신자들의 열성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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